에스라 9:11


스 9:11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가나안 땅의 정복 타이밍은 원주민들의 죄악의 정도와 직결되었다. 아브라함에게 땅의 약속을 주실 때에도 하나님의 눈은 그 땅에 가득 채워져가는 죄악의 진행을 측정하고 계셨다.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죄악이 가득 차자 주께서는 그 땅의 일곱 족속들을 몰아내고 여호수아 군대를 진주시키셨다. 그러나 그같은 하나님의 공의는 당신의 백성에게도 공히 적용되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후 우상을 숭배하며 이전의 원주민들과 다를 바 없는 죄악으로 가나안 땅을 채워나가자, 그들을 심판하시며 이방의 땅으로 내보내셨다. 지금 우리의 시대 역시 하나님의 공의는 똑같이 적용된다. 요한계시록이 예고한 대환란은 더러움으로 가득해진 지구를 단죄하는 최종적 집행인 셈이다. 이를 축소할 때 개인의 삶에서도 공의의 집행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언행심사가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자든 비신자든 하나님의 법의 적용은 형평을 잃지 않는다. 신자에게 주어진 특혜가 있다면 각성과 회개, 그리고 회복의 기회가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이다. 에스라는 이미 지난 과거의 죄마저 조상을 대신하며 회개한다 이른바 ‘동일시 회개’다. 나의 가문, 나의 과거에도 돌이켜 회개할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회개는 정화와 회복을 가져오며 정결함과 화평으로 내면을 새롭게 한다. 주 보혈 아래에서 내가 선 땅, 나의 삶의 자리가 늘 정결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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