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2:67-68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본문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님에게 메시아 인지를 스스로 밝히라고 할 때에 주신 답이다. ‘확증편향’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경향이다. 그런 마음은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고 깨닫지 못한다.
공회원들에게 가장 큰 결핍은 구도하는 마음의 부재다. 알아보려하고, 얻으려 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기만 했다면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니고데모가 그랬고 그에겐 구원이 임했다. 구도하는 마음이 없으면 판단하는 마음이 앞선다. 판단은 정죄를 부르고 정죄는 슬픔을 낳는다. 내 안에 있는 확증편향적 부분을 분별하고 정리해가야 한다.
성막에서 제사장이 물두멍 앞에 서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서는 것이 해법이지만, 바리새인이나 공회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오류의 여지를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멀었다. 갈망과 애통함이 복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게 하신 은혜가 감사하다. 그 은혜 아니면 나 역시 인본적, 육신적 확증편향의 희생자가 되었으리라.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주님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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