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9-10

욥 2:9-10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의 아내는 인간이 지닌 종교성의 끝을 보인다. 종교성은 신을 따르는 것 같아도 결국 그 중심은 인간 자신의 안녕에 있다. 그 안녕이 깨지면 신과의 관계도 깨지게 된다. 욥의 아내가 그 입장에 있었다. 환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참 신앙에 있는지, 종교성에 있는지를 드러나게 한다.


복음적 신앙을 지녀도 환난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신앙의 성숙도가 갈라진다. 치명적이거나 장기화된 고난을 겪는 사람은 욥의 아내까지는 안 가도 그 심정에 공감한다. 과연 하나님이 의지할 만한 분인지 마음이 놓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질세계를 사는 연약한 피조물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는 은혜가 필요하다. 그 은혜로 근원적 의구심의 고비를 넘어설 때 비로소 영생의 핵심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욥의 아내의 말은 고난을 겪는 인간이 신에게 던져 온 항변을 대변한다. 아프리카의 기근으로부터 아우슈비츠에 이르는 고난의 불가해함이 많은 영혼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꼭 고난만은 아니다 . 의도한 대로 되지않는 지속적 상황도 유사효과를 지닌다. 그래서 그 항변까지는 안 가도 하나님에 대해 은근한 불만이나 거리감을 가질 수 있다. 오늘, 내 안에 그런 그림자는 없는지를 살핀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욥기 9:27~28

욥 9:27-28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생명의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토설은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는 우는 아이의 마음이다. 엄마 이외에 다른 누가 없기 때문이며, 아울러 엄마만한 다른 누가 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 밖에

욥기 8:6-7

욥 8:6-7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의 말은 그 자체로 구구절절 그른 데가 없다. 그러나 그 말이 권선징악 개념에서 오는 판단에 바탕한다는 점이 문제다. 원칙적으로 판단은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욥기 6:10

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4절에서 욥은 자신의 고통을 전능자의 화살로 비유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신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그간의 경건에서 오는 자신감의 반응일 수도 있다. 만일 죄책이 가득했다면 전능자의 채찍으로 인정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