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9-10

출 3:9-10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제사 모세의 데스티니가 드러난다.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의 출애굽이었다. 홀홀단신으로 이집트 문명과 파워를 감당하라 하신다. 한 때 잘 나가던 사람이었지만 이젠 양치는 노인에 불과하다. 인생 마감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돌연 엄청난 임무가 맡겨진다.


그 동력은 단 하나, 12절 말씀처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에 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다. 모세의 80년 세월은 이 조건을 구비시키기 위한 연단의 세월이었다. 이를 위해 모세를 바닥에서 바닥으로 내려가게 하셨다. 속에 있는 거짓자아가 드러나고 그것들을 미디안 광야에 묻게 하셨다.


요셉의 13년 연단은 애굽에서 2인자가 되게 했는데, 모세의 40년 연단은 그 애굽을 무릎꿇게 했다. 연단이 축복이다. 연단이 깊을 수록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달라진다. 그러나 연단은 뼈아프다. 대부분 연단이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은 통과를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과가 잘 안 되는 이유는 거짓자아가 죽지않기 때문이다. 출애굽 1세대는 홍해를 건너고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주시는 은혜’를 갈망한다. 바닥에 내려가는 것도 은혜다. 내려갈 수록 임마누엘의 은총에 닿는 면적은 넓어진다. 연단에 감사한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욥기 11:7, 9

욥 11:7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욥 11:9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소발의 말은 그른 데가 없다. 그러나 그의 말은 사실상 자신에 대한 말이다. 소발이야말로 하나님의 오묘함에 무지하다. 물론 그 시대에 주어진 계시적 한계이기도 하다. 그는 아직 영적 전쟁을 모르고 욥을 향한 하

욥기 10:17

욥 10:17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신앙 여정에서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이 돌아가며 괴롭히고, 모든 상황들이 군대가 작전을 펼치듯 공격해오는 것 같은 상황들이다. 실제로는 사탄이 온 힘을 다해 내적, 외적 공격을 구사하며 욥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려는

욥기 10:8

욥 10: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치 수용소에서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참하게 죽임당했을 때, 반응이 여러가지였다. 우선 두드러진 것이 ‘신 죽음의 신학’이었다. 신은 죽었다는 것이다. 신이 살아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 생각이다. 사실상 신을 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