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2:10-11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본문은 고린도교회 공동체를 근심하게 한 누군가를 다루고 있다. 누가 어떻게 근심을 끼쳤는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바울과 모두를 우려하게 할만한 소동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분별케하고 회개를 권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자숙의 시간을 갖는 동안 공동체는 그를 용서하고 회복을 위하여 중보하며 위로한다.
종종 올바른 경계선을 세우는 일이 정죄하는 것과 혼돈스러울 때가 있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체벌할 때 훈육의 정도를 넘어 감정이 실리는 경우와 유사하다. 이런 혼돈을 방지하려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하시며 사랑을 강조하셨지만 그렇다고 물러터지게 사신 것은 분명 아니다.
영혼을 소중히 대하시며 경책하시되 정죄하지 않으셨으며 회개하는 영혼을 사랑으로 품으셨다. 사람은 연약하다. 누군가가 헐뜯기 시작하면 정죄받지 않을 사람은 없다. 연약함을 놓고 예수님처럼 사랑과 지혜로 풀어갈 것인가, 사탄처럼 정죄와 참소로 짓이길 것인가의 기로가 갈린다. 남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공생애를 통해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본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