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2:17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엘리후도 욥의 겪는 고난의 진상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만일 정확히 알았다면 그의 의견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나마 엘리후가 세 친구에 비하면 하나님의 입장을 더 헤아리는 진전이 있었다. 그의 스케일과 어휘구사는 보다 깊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세 친구가 짚지 못한 부분을 마저 다룬 정도에 그쳤다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을 보면 마치 코끼리를 만지는 시각장애자들을 연상케 한다. 다리를 만진 이는 기둥이라고 하고, 움직이는 코를 만진 사람은 두꺼운 호스라고 하듯이… 결국 성경은 전체를 두루 섭렵해야 한다. 구약의 제사를 모르면 십자가의 희생의 의미는 생뚱맞을 수 있다. 신약의 영적 전투 개념을 모르면 욥의 고난의 현상에 대해선 파악 자체가 안 된다.
하나님과 영적 세계에 대해 가장 많이, 가장 올바로 알려주는 성경을 멀리하거나 혹은, 부분적으로만 접한다면 헛짚다가 세월을 보낼 수도 있고, 그런 경우는 실제로 허다하다. 욥의 친구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이 이 점일 수 있다. 많은 분석과 판단에 에너지를 들일 게 아니라 진리를 붙드는 일과 순종에 에너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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