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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9:27~28


욥 9:27-28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생명의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토설은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는 우는 아이의 마음이다. 엄마 이외에 다른 누가 없기 때문이며, 아울러 엄마만한 다른 누가 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 밖에는 없는데 지금 현재는 아프고 외롭다. 오직 의지하는 엄마인데 친밀함을 느낄 수 없어서다. 주님과 우리 사이가 자주 이렇다.


욥은 고난의 이유를 찾다가 이제 죄의 개연성을 언급하는 지경에 이른다. 탈탈 탈면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겠는가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죄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욥의 토설은 매우 디테일하다. 미세한 구석 하나까지도 헤아리며 마음의 그늘을 낱낱이 서술한다. 대적이나 이탈이 아니라 진술이며 질문이다. 여전히 욥은 외줄 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고 있다.


논산의 훈련소는 장정을 불러 연단시킨다. 초등학생에게 그런 훈련은 연단이 아니라 학대일 것이다. 그러나 장정에겐 훈련이며 변화이며 감당할 능력의 증가다. 하나님은 욥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그를 다루신다. 내가 주님의 줄을 놓지 않는 한, 감당하지 못할 연단은 없다. 어휘의 수준과 내용과 깊이는 관계의 풍성함과 깊이에 이르게 한다. 욥은 더 깊은 데로 들어가고 있다. 어려운 때 필요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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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복음은 속죄의 은총을 넘어 세계관의 변혁을 요구한다. 복음은 율법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려는 인간의 시도가 턱없음을 알려준다. 복음은 통치자와 권세들, 즉 타락

골 1:16-17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오늘 본문(골 1:15-20)은 초대교회에서 자주 불리던 그리스도찬가다. 여기엔 그리스도의 위격과 권세가

골 1:7-8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에바브라는 옥중에서도 바울과 함께 한 신실한 사역자로서 골로새교회를 개척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골로새를 직접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에바브라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충분히 전달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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