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25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금메달을 바라보며 훈련하는 선수들의 공통점은 절제다. 식생활의 절제, 시간관리의 절제, 멘탈의 절제, 심지어 운동량의 절제에 이르기까지 그 폭은 상당히 넓다. 절제가 안 된다는 것은 본능에 무릎꿇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어떤 성취도 불가능한 수준이 된다. 신앙이나 소명의 길도 유사하다. 육성을 이기지 못하면 영성은 다듬어지기 힘들다.


절제의 적용범위는 큼지막한 사이즈에서 사소한 사이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큰 결단을 했어도 디테일이 쌓이지 않으면 원하기는 하지만 얻기 힘든 상태에 머물 수 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는 ‘모든 일’에 절제하는 사람이다. 어느 한 쪽에 구멍이 뚫리면 뒤뚱거리는 불균형을 피할 수 없다. 힘써보지만 힘겨우며 성취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천국은 절제미가 넘치는 곳일 것이다. 각자가, 그리고 모든 만상이 적절히 자신의 공간을 지키며 존재의 목적을 빛내는 곳일 것이다. 성령님은 만물을 그렇게 간수하시며 창조주의 경륜을 이루어 가신다. 절제는 또한 습관이다. 절제가 습관이 되게 한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인생길에서 진정한 승리자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영광과 선한 일을 위하여 쓰임받으려 하는 자는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시 22:14-15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시 22편 서두(1절)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탄원과 같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22편을 기억하셨던 거다. 본문 역시 십자가에

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는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과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 경)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하만의 음모를 극복한

에 9:15-16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만이 부추긴 조서는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내의 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