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바울에 의하면 사람은 셋 중 하나다. 본문처럼 ‘신령한 자’와 ‘육신에 속한 자’, 그리고 ‘육에 속한 자’(고전 2:14)이다. 신령한 자는 성령충만한 사람을 뜻한다. 은사자이기보다 예수님과 연합한 자의 의미가 깊다. 이 연합은 자기를 부인함으로 열려지는 은혜다. 육신에 속한 자는 중생은 했지만 자기중심성이 여전한 신자를 말한다. 이를 두고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이로 표현했다. 육에 속한 자는 비신자를 일컫는다. 영의 감각이 일체 없는 사람이다.
파당과 분쟁에 관여했던 고린도 교인들은 육신에 속했다. 그들에게선 자기중심성이 두드러졌다. 은혜를 알았지만 깊이 알지는 못했으며, 구원은 받았지만 성숙하지는 못했다. 이는 단지 고린도 교인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신앙의 여정 가운데서 이 과정을 통과하는 거 같다. 육신의 출생과 성장처럼 거듭남 이후에 영유아나 아동기 단계를 거쳐 성장기로 변화되는 과정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성숙함에 대한 자신은 없다.
그나마 고린도에는 바울로 인해 직면하고 진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직면시키는 일도 꺼려하며 진단이 되어도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 어렵다. 신령한 자가 대학원생이라면 육신에 속한자는 초등생이나 유치원생이다. 바울이 나를 안다면 어떤 수준으로 보려할까. 은정은 어느 레벨에 속할까. 나는 죽고 나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던 그 바울의 고백이 부럽다. 오늘도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따름을 새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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