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

고전 1:30-31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중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체험이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열려지는 축복인데, 십자가의 대속은 단지 예수님의 죽음만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나의 죽음을 포함한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은혜다. 이른 바 옛 사람이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전환이다(고후 5:17).

중생은 나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한다. 이는 예수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예수로 말미암아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육신의 저항으로 인해 진도가 더딜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중생한 신자는 어떻게든 이 과정을 이어가게 하신다. 이 진도가 깊을 수록 덕을 보는 것은 나다. 하나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참된 신자는 ‘안에’ 있는 것으로 바깥을 사는 사람이다. 마음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으로 사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마음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안에’ 있다는 것은 마음 눈이 예수님을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 마음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지향은 ‘믿음’의 표식이 된다. 믿음의 연륜이 쌓일 수록 절감하는 것이 내적 지향의 중요성이다. 찬송 가사 그대로 세월 지나갈 수록 의지할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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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22:14-15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시 22편 서두(1절)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탄원과 같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22편을 기억하셨던 거다. 본문 역시 십자가에

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는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과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 경)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하만의 음모를 극복한

에 9:15-16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만이 부추긴 조서는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내의 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