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6:39-40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고대 근동에선 전쟁 수행 전에 신의 뜻을 묻는 관행이 있었다. 기드온은 이미 주어진 계시와 관행 사이에서 어중간한 스탠스를 취했다. 36절을 보면 이미 그는 주의 말씀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계속 표징을 구한다. 2%의 부족함일까. 간간히 그는 그런 면모를 보인다. 기드온을 볼 때마다 느끼는 아슬아슬함이다. 물은 1도 사이에서 끓기도 하고 안 끓기도 한다. 먹느냐 못먹느냐가 갈린다.
그의 부족함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돋보인다. 그래서 이 정도면 마음 놓겠니.. 하시듯 확실하게 사인을 허락하신다. 이런 밀당을 허락하신 데에는 바알제단을 헐은 기도온의 결행이 한 몫 했을 거라 여겨진다. 연약함이 보여도 대세를 굳힌 그 기세를 받쳐주신 것이다. 결정적인 대목에서 순종하면 디테일에서 긍휼을 입는다.
듣는 기도(listening prayer)에서 확인 과정은 거의 필요하다고 보아야 한다. 타이밍과 방향을 잡는데에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서두르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별을 따라 온 동방박사의 경우가 그렇다. 별의 나타남과 움직임은 구주의 탄생과 장소를 분별케 했다.
그러나 순종의 기반이 필수다. 성경학자 베리 웹은 양털 표징이 기드온의 불신앙의 표현이라 분석했다. 시기와 방향을 물은 게 아니라 할까 말까를 물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님은 품으셨다. 성숙의 수준을 따라 맞춤 인도하시는 자애로운 아비의 방식이다. 예수 안에서 내게 주어진 은총과 같다. 창조주가 내 아버지시다. 자애로운 아바 아버지시다. 연약해도 붙드신다. 감사하며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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