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39:25-26

출 39:25-26 순금으로 방울을 만들어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석류 사이사이에 달되 방울과 석류를 서로 간격을 두고 번갈아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에봇 밑자락에 순금 방울을 석류 장식 사이에 달라 하신다. 출 28장에는 이 방울의 기능이 소개된다.

출 28:35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대제사장이 일년 일차 지성소에 들어가는 절기가 대속죄일이다. 들어가기 전 여러차례의 속죄제사를 드린다. 속죄가 온전치 않으면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울은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에서 직무를 계속 감당하고 있는지를 감잡게 한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전승에 의하면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 발목에 밧줄을 매었다고 전해지는데, 죽었을 경우 시신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진다. 선지자 이사야가 영안이 열려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뵈었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탄식한 이유와 맥이 같다(사 6:5).


간혹 예배나 집회를 인도할 때 임재의 밀도가 꽉 차듯 느껴질 때가 있다. 어김없이 따라오는 현상은 애통함이다. 임재의 빛 가운데 각자의 어떠함이 그대로 직관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뵌다는 것은 이렇게 장중하며 진중한 일이다. 이는 역으로 우리가 임재를 잘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은총을 감당할만큼 성결하거나 구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 대속죄일이었다. 오늘 내 삶의 어느 부분에 정화가 절실한지를 여쭙는다. 방울 소리를 사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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