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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1:2(2017.09.14)

  • 정재우
  • Sep 13, 2017
  • 2 min read

사 21: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1. 혹독한 묵시 이사야는 자기가 죽고도 긴 세월 뒤에 일어날 바벨론의 멸망을 정확하게 묘사한다. 묵시가 임했기 때문이다. 물론 '혹독한 묵시'였지만 하나님께서 미래지사를 미리 보게 하신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은 이사야의 예언을 깨닫는 사람으로 하여금 권력의 무상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바벨론이 장구할 것 같아도 곧 무너질 날이 온다. 앗수르도 무너지고 바벨론도 무너진다. 다 무너지는 것이다. 무너질 것을 기대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다. 혹독한 묵시의 핵심은 간단하다. 세상은 겉보기 그럴 듯해도 결국은 무너질 것이니 기대지말라는 것이다. 2. 희망찬 묵시 희망찬 묵시를 보아야 한다. 희망찬 묵시란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 같은 것이다. 희망찬 묵시는 영원한 것을 깨닫게하고 기대라한다. 그래서 묵시를 보는 사람은 복되다. 희망찬 묵시는 능력을 공급받게 한다. 어떤 짐도 거뜬히 감당하게 하는 힘이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믿음지켰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희망찬 묵시를 붙들었기에 승리했다. 신약시대는 희망찬 묵시를 보는 시대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잠언서는 묵시가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한다고 했다. 묵시가 없는 그리스도인 역시 방자히 행한다. 방향을 모르기 때문이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29:18) 3. 회개하지 않은 대가 이스라엘과 시온성전은 평소에도 나일강으로부터 메소포타미아에 이르기까지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앗수르나 바벨론도 그들에 대해 들었을 것이며 야훼신앙에 대해 파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온산에 좌정하신 하나님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힘과 돈과 외형이었다. 힘과 돈과 외형이 그들의 종교였다. 이스라엘을 통해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들은 세속의 기준으로 시온산을 외면했다. 세상의 찰나적인 것 때문에 영원을 외면한 것이다. 그래서 경건하지 않은 나라로 경건하지 않은 나라를 치는 징계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역사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묵시가 희망찬 묵시인지 허망한 묵시인지를 살펴야한다. 허망한 묵시는 힘과 돈을 추구한다. 힘과 돈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면 외면한다. 바벨론은 허망한 묵시를 바라보며 말을 달렸던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는 속임당하고 약탈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무너질 것을 기대면 당연히 넘어지게 되어 있다. 나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희망찬 묵시를 바라보는가? 묵시의 강점은 제대로 보았다면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을 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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