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31일


민 9: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이스라엘은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다. 개개인의 사정이 저마다 달랐을 것이다. 뭔가 다급한 개인사정이 생긴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뭔가에 잔뜩 몰두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든 구름의 움직임 앞에서는 모두가 행동통일을 해야했다. 구름이 움직이면 하던 일을 중지하고 짐을 싸서 이동해야 했고 구름이 머물면 움직이고 싶어도 머물러야 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본문은 그 요령을 가르친다. 뭔가 개인적인 다급함이나 개인적인 몰두 내지 각자의 특별한 사정이 있을 수 있지만 구름의 움직임, 즉 말씀과 성령의 감화하심 앞에선 동작금지와 전적 순복이 최우선임을 알게 한다. '아.. 왜 지금 움직이라 하시는건지요, 아.. 왜 지금 가만있으라 하시는건지요' 등등의 질문이나 항변은 무의미하다. 그리되면 그것은 마치 양이 목자의 인도에 토를 다는 것과 같다. 본문에서 구름의 움직임은 초자연적 현상이다. 피를 바른 제단과 기름이 발라진 성소와 우러나오는 헌신이 어우러질 때 하나님의 영광은 구름으로 중화되어 지속적으로 함께 하며 이스라엘을 목자같이 인도하셨다. 초자연적 현상임에도 이스라엘의 눈높이에 맞추어 당신의 인도하심을 구름으로 보게 하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자체는 초자연적이지만 목자가 양이 알아듣게 인도하듯 우리의 눈높이를 감안해서 인도하신다. 그래서 지나친 신비주의는 위험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최우선이며 즉각적인 순종이 최상의 선택임을 알고도 미적거린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굵직한 부분에선 대체적으로 미스가 덜 났는데 그 '디테일'에서 즉각성이 떨어진 때가 종종 있었고, 이는 결국 구름이 움직였음에도 미적거린 결과가 되었다. 굵직한 구름만이 아니라 디테일한 구름도 놓치지 말아야겠다. 이래저래 주님에 대한 결례만 쌓여가는 것 같다..

#정재우Joshua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욥기 9:27~28

욥 9:27-28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생명의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토설은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는 우는 아이의 마음이다. 엄마 이외에 다른 누가 없기 때문이며, 아울러 엄마만한 다른 누가 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 밖에

욥기 8:6-7

욥 8:6-7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의 말은 그 자체로 구구절절 그른 데가 없다. 그러나 그 말이 권선징악 개념에서 오는 판단에 바탕한다는 점이 문제다. 원칙적으로 판단은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욥기 6:10

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4절에서 욥은 자신의 고통을 전능자의 화살로 비유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신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그간의 경건에서 오는 자신감의 반응일 수도 있다. 만일 죄책이 가득했다면 전능자의 채찍으로 인정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