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시는 하나님


‘한국심리학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 행복지표 순위는 세계 50위권이라고 합니다. 또한 OECD의 각국 행복순위 조사에서도 자살률, 비정규직 비율, 산재 사망자, 이혼율 등 각종 ‘불행지표’에서 한국이 1~2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불행지표가 높아지면서 조금이라도 현실을 잊기 위해서 술, 담배, 도박을 가까이 하는 인구도 계속 증가된다고 합니다. 수치적인 결과가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행복’이나 ‘만족’이라는 단어와는 상반되는 어려운 환경과 사건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체감하게 됩니다. 생계의 문제, 질병의 위험, 꼬여만 가는 인간관계 등이 삶에서 짐처럼 우리 어깨를 무겁게 누를 때, ‘이런 짐들을 거뜬히 감당할 길은 없을까’라는 것이 모든 이들의 마음에 담긴 바램 일 것입니다. 직접적인 해결책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을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의 두터운 벽으로 인한 소통의 단절과 부재가 보편적인 현상이 된 사회에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인의 근원적인 문제는 바로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고독에 대해서 작가 루이제 린저는 ‘텅 빈 방 홀로 의자에 묶인 나의 모습’라 표현했습니다. 텅 빈 방에 홀로 있는 것도 극한 외로움에 빠지는데, 의자에 묶여 있기까지 하다면 얼마나 무기력해 보이겠습니까.

이러한 인생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어떻게 평안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성경은 환경의 변화 이전에 먼저 사람마다 각각 ‘마음에 숨은 사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3-4) 심리학에서도 누구나 자신의 마음 안에 ‘무의식 속의 자신’이 있다고 합니다. 무의식 속 자아의 반응과 상태에 따라 심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평안과 안정을 느끼는 것은 환경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마음에 숨은 사람이 평안한가 그렇지 아니한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느끼고 있는 불안과 절망의 감정이 혹시 환경적인 원인 이전에 마음속의 숨은 사람이 허무와 외로움과 힘겨움으로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것은 삶의 형편이 조금 나아지거나 감각적인 즐거움이 더해진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환경에 상관없이 깊은 마음속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근원적인 평안이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곁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동료가 있지만 여전히 불안과 절망이 공존하는 것은 참된 안식의 차원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는 참된 안식의 길로 동행할 누군가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신비로운 종교이자 축복이 되는 것은 영원히 함께 참된 안식의 길로 동행할 수 있는 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하면서 힘이 되어주고, 현실 속 무거운 짐을 대신 맡아주고, 만나면 언제나 기쁨이 되어주는 친구와 같은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온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지만 한 때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들이 지은 죄와 그 죄로 인한 무거운 짐을 대신 걸머지시고 십자가 형틀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죄 사함 받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전기와 초음파와 같은 파장이 엄연히 존재하듯이, 예수님은 보이지는 않지만 영의 세계라 부르는 영역에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친구처럼 다가오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가시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가야할 참된 길들을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함께 동행해주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특히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더 가까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야훼는 마음이 상한 사람 곁에 계시고, 낙심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십니다”(시 34:18) 라고 말씀합니다. 2차 대전 당시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런던 중심부에 독일군의 폭격이 끊이지 않았을 때, 대피소의 모든 사람이 불안한 나머지 밤잠을 못 이루는 상황에서 평안히 잠을 자던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고 합니다. 그분에게 어떻게 평안 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매일 밤 기도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 주신다는 확신이 들어 잠자리에 들 수 있답니다. 나와 하나님 둘 다 깨어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들을 바라봅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옵니까? 나의 도움은 야훼로부터 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분으로부터 옵니다. 야훼께서 여러분의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지켜 주시는 그분은 졸지 않으십니다. 정말로 이스라엘을 지켜 주시는 그분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시 121편, 쉬운성경) 문제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잘되던 일이 안 될 수도 있고, 거절당할 때도 있으며, 병들 때나 피곤에 지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영적 특권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이 우리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각종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는 길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분께서 지금 여러분에게 함께 동행하자 말씀하시며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참된 평안의 길로 인도함 받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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