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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4:33 [11월 8일]

창 44: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몰리는 상황에서 유다는 베냐민을 대신해 인질이 되겠다고 나선다. 만일 이 때,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요셉의 마음은 독한 쪽으로 틀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형들에게 버림받았던 트라우마 까닭이다. 다행히 상황은 예전과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유다가 변한 것이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일로 충만한 곳이 천국이라고 했다. 유다는 지옥 대신 천국이 스며들게 하고 있다. 본 회퍼는 신자의 정체성을 ‘이웃을 위한 존재’(the man for others)로 규정했다.


배려에는 희생이 따른다. 나의 편의, 나의 유익만을 구하면 배려는 어렵다. 산상수훈은 배려의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한다. 그럼 5리를 가자해서 10리를 가주었는데, 20리 동행을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쉽게도 배려받는 인간의 자기중심성은 은혜 감각을 무디게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경계선 긋기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경계선을 고려할 정도로 배려를 실천하는 마음이다. 구체적인 실천의 결과, 경계선을 생각할 정도면 주님을 뵐 낯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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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3:17-18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예레미야의 탄식은 유다의 아픔에 동일시하는 탄식이다. 누군가를 향한 중보가 깊어지면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며, 그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 된다. 그의 안위 또한 자신의 안위가 되기에 그를 끊으

애 2: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령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너뜨리사 원수가 너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며 네 대적자들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한 모세의 우려가 담긴 대목이 있다. 신 31: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애 2:5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애 2: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회개하지 않는 죄는 주님에게 원수같이 되어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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