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0:11-12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아브라함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었다. 족보상 사라가 아브라함의 이복누이임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신앙이다. 불신앙이나 불순종은 근거를 타고 틈탈 때가 많다. 좋은 신앙은 근거와 동기를 진리에 비추어 분별한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롯으로 인한 부대낌도 그랬지만 아내를 누이라고 위장한 사례가 두 번째다. 애굽에서의 첫 사례 이후 신앙의 연단을 받으며 20여 년이 넘은 세월을 지냈어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여전히 떨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누이였어도 아내라고 말했어야 했다. 자칫했으면 이삭의 계보 판단에 큰 혼란이 올 뻔했다.
나의 생각의 근원을 살펴야 한다. 사탄은 무식하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때론 광명의 천사처럼, 때론 내 입장을 헤아려주는 것처럼 접근한다. 그리고는 두려움과 의심에 바탕한 불신앙적 선택을 하게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선제적으로 살펴주신다. 연약한 사람의 성정을 아신 까닭이다. 신자는 은혜 아니면 제대로 살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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