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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0:9~10

시 30:9-10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십자가는 세상의 고난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보여준다. 죄와 저주에서 건지시기 위해 가장 먼저 하신 일이 고난의 수렁에 뛰어드신 일이다. 신의 기준에선 성육신 자체가 수치였는데, 그보다 더한 수치와 고통이 십자가를 통해 얹어진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선교사들 역시 소명의 과정에서 수치와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은 피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반전에는 무덤에 내려가는 듯한 과정이 수반된다. 이는 타락한 행성이 지닌 구조적 속성 때문이다. 통상 고난은 죄로 인한 대가였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에게로 전향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새롭게 해석된다. 이 때 고난은 죄와 벌의 구도를 넘어 하나님께 붙게 하는 접착제가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영혼은 자신을 성찰하며 하나님의 이치를 헤아리다가 그 마음이 하나님의 헤세드에 접하게 되면 더 이상 환경은 문제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가 자신에게 있음을 통찰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근본 여호와의 은혜, 여호와의 도움이 절실한 존재다. 이 사실을 절감할 수록 오히려 영혼은 안정을 찾게 되는 역설이 있다. 본문의 탄원은 가히 하나님의 심금을 울렸으리라 생각한다. 전적 의존이요 긍휼지향의 호소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 내 심령도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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