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4:27-28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본문의 방언은 개인의 덕을 세우는 기도방언이 아니라 예언의 기능을 하는 방언에 대한 권면이다. 즉 개인이 방언으로 기도하거나 각자 통성으로 기도할 때의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예배 상황에서 강권하심을 받아 선포하듯 방언을 말하는 경우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순복음교단에서조차 보기 힘든 현상이나 은사적 역사가 활발한 외국의 오순절 계열의 교회에서는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때엔 예배의 진행을 멈추고 모두 통변을 기다린다. 예언의 기능으로 주어졌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러 명에게 감동이 왔을 때는 차례를 따라서 질서있게 방언을 말해야 했다.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자리가 분명하다면 감화와 조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영국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현지인교회를 방문하며 겪은 바로는 방언하는 자나 통역하는 자 모두가 겸손하게 사역하는 모습을 보았다. 과시하는 경우도, 추켜세우는 경우도 없었다.
본문은 당시 모든 교회에서 은사적 역사가 상당히 활성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은사장을 담은 고린도서한이 경전으로 채택된 것은 성경적인 지침을 제시해야 할 정도로 대부분의 교회에서 은사적 현상이 일어났음을 추정하게 한다. 질서와 조화, 사랑장에 바탕한 성숙함이 필요했다. 이런 영성적 바탕이 미비되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가볍지 않다. 오늘날 이런 모습을 잘 보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절제가 어려우면 허락하지 않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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