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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16

고전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 한다. 자신감이라거나 교만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그의 고백대로 그는 죽었고 그의 안에 사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며, 그럼에도 고개를 쳐드는 육신을 날마다 죽이며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근본이 예수지향으로 바뀐 사람이다. 완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봄이자, 정진이고, 전적 의탁이다. 요한 웨슬레가 ‘기독자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을 말했는데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만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본받아 바울처럼 산다면 영적으로 가장 강력한 교회가 될 것이다. 영성과 능력, 소명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탁월한 공동체가 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본문은 나를 향한 권면이다. 바울은 나에게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는 셈이다. 자신처럼 예수 안에서 죽고 예수로 말미암아 살라는 것이다. 근본이 연약하지만 주님에 대한 절대의존으로 주 안에서 강한 자가 되라는 권면이다.


주께서 성령 안에서 그러신 것처럼 고난조차도 성령 안에서 능히 감당해내라는 것이다. 세상이 십자가를 대적해도, 즉 복음에 대해 반발하더라도 기죽지말고 오히려 그런 세상을 마주 대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랑장(고전 13장)에 언급한 그 아름다운 사랑으로 영혼들을 품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사셨다면, 바울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살아낸 사람이다. 바울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그 좌표를 다시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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