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5:31-32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두 아들 모두 문제의 인물이었다. 양상은 달라도 공통점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실상 그들은 아버지를 알지 못했다. 하나는 욕망과 죄의식으로, 다른 하나는 고정관념으로 가득하여 아버지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다. 아버지 입장에 확실하게 서본적이 없었고 당장 눈 앞의 현실에 자신을 기준으로 일희일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사랑과 정의에 관한 논쟁이 많았다. 사랑으로 뭉개면 정의는 언제 서는가 하는 주장과 모두가 사랑에 서면 정의가 불필요해진다는 논리다. 초점은 이렇게 모아진다. 온전한 사랑은 칭의의 은혜에서 오는 것으로 정의를 포함하는 사랑의 실천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온전한 사랑은 아가페다. 아가페를 알았다면 두 아들은 이렇게 가지 않았을 것이다.
적지않은 신자들이 심리적으로는 맏이와 탕자 사이를 곡예처럼 왕복하며 산다. 죄의식에 힘들어 하다가, 내로남불의 쌍심지를 치켜뜨기도 한다. 본문을 접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둘 중 어느 하나에 속하여 나의 허실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은혜다.이 비유에서 가장 가능한 베스트를 연상한다면 아버지 못지않게 동생의 귀환을 기뻐하는 맏이의 모습이다. 성부 하나님에게 성자 예수님이 그러셨을 것이다. 예수님을 계속 닮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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