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2:5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의 클라이막스 부분이다. 욥은 하나님에 대한 신학을 넘어서 하나님 현존 앞에 머무른다. 지식적인 앎에서 체험적 앎으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 그대로다. 그 전환만으로도 욥은 극한 고난의 짐을 벗는다. 고난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광과 영원의 세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세계관의 변화다.


하나님의 현현은 모든 의문과 모든 시험과 모든 판단을 제로화시킨다. 압도적 아가페의 무드 아래 새롭게 재부팅하게 한다. 질문들이 연속되었지만 사실상 가르치신 것과 같다. 창조주의 개인레슨이다. 욥의 지금 상황이 어땠는가를 알게 하는 사람이 선지자 이사야다. 영광의 옷자락이 가득한 성전 바닥에 엎디어 지식과 내면, 소명이 모두 새롭게 된다.


이와 유사한 은총을 만민에게 개방하신 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이다. 성령충만은 귀로 듣기만 했던 주님을 눈으로 보게 하는 은총이다. 아직 알아가야 할 진리의 세계가 무궁하지만 더 이상 상식의 기준으로 살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진리를 붙들고 나아가게 한다. 고난이 걸림이 되지 않는다. 주님과 영원한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가해지나 또한 모든 것을 절제한다. 바울이 말한 바 사랑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 눈으로 주님을 본 사람에게 나타나는 은혜다. 오늘, 시험보듯이 나의 마음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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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곧바로 희생제물을 취하여 번제를 드린다. 제물의 죽음은 대속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희생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용납되었다. 그 시초는 타락한 아담의 몸을 가리우기 위해 가

창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어마어마한 심판이 집행되는 중에도 하나님의 일정은 적시에 진행되었다. 방주에 저장된 양식의 재고를 헤아리시며 상황을 통제하셨다. 생존에 지장이 없게끔 간수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택하신 대상을 잊지 않으시며 필요한 일을

창 7:11-12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사람들은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는가 했지만 하나님께서 경고하신대로 대홍수가 일어났다. 홍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때였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경고였다. 지금도 유사한 상황이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