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최근 게시물

욥기 36:10

Dec 16, 2021
1 min read

욥 36: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엘리후는 고난이 지닌 결정적인 기능이 사람을 죄악에서 돌이키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 자신을 돌아본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남 탓이나 환경 탓을 하며 외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래 전, 주행하는 차량 뒷 유리에 ‘내 탓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본 적이 있다. 고난과 상관없이 그렇게 내적 성찰을 잘 할 수 있다면 고난을 면하거나 아니면 고난을 덜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S.루이스가 했던 그 유명한 말, ‘고난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는 말은 진실이다. 본문은 그 말의 엘리후 식 버전인 셈이다. 만일 고난이 없었다면 사람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량처럼 의의 길에서 더 어긋났을 것이며 상상을 넘는 파국을 맞이했을 것이다. 어찌 됐든 욥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눈으로 뵙는 계시적 은총을 체험한다. 그의 하나님 의식은 고난 이전과 이후로 갈라진다. 고난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했다. 고난이 꼭 죄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는 고난이 있는가 하면,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고난이 있다. 엘리후는 전자를 말했고, 욥은 후자의 케이스다. 전자는 징계이고 후자는 학습이다. 반면 죄에 빠진 다른 이들을 돌이키게 하는 고난도 있다. 사명적 고난이다. 십자가의 고난, 바울이 선교하며 겪은 고난이 그렇다. 엘리후는 절반도 못 맞춘 셈이다. 분명한 건 고난에 뜻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차원의 고난이든 그걸 건져야 한다. 나는 건졌을까. 아니면 건지고 있을까… 그것을 살핀다.



Recent Posts

See All
매일 묵상ㅣ시편 74:9

[시74:9]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본편의 배경은 바벨론 침공 때이다. 성전이 파괴되고 불살라지는 끔찍한 상황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자가 되시나(13), 그 백성이 등을 돌려 대적의 표적이 된 것이다. 엄청난 상승의 기회를 얻었지만 죄성과 육성이 넘어지게 한 까닭

 
 
 
매일 묵상ㅣ시편 71:18

[시71:18]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백발의 기도문이다. 시편기자는 어려서부터 주님을 섬겼다(6절). 이제 노년이 되었지만 목적의식은 분명하다. 주의 힘과 주의 능력을 후대에 전하는 일이다. 백발의 시즌에는 가장 최상의 방향이

 
 
 
매일 묵상ㅣ시편 70:5

[시70: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다윗은 여러 위기를 맞았었다. 본편의 상황이 어느 때인지는 특정할 수 없지만 자신의 무력감을 절감하는 상황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시편은 후일에 기도의 예전문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위기에 처해 무력감을 느끼는

 
 
 

Comments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은혜의정원교회    © GRACE GARDEN CHURCH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중앙로 220 우성미사타워 9층 Tel. 031-796-2026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