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1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공부해서 남 주자’를 모토로 후학을 키우는데 주력하셨던 한동대 김영길총장은 미국 나사(NASA)에 재직할 때 그토록 탁월한 과학자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평소 존경하던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분 역시 신앙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간증한 적이 있다. 조금만 각성되어도 영혼은 만물에서 하나님을 감지한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증거의 부재가 아니라 성령의 부재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의 마음이 혼미케하는 영에 덮였다고 말한다(고후 4:4). 그 결과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자기를 위하여 살게 되는데 그 끝은 사탄과 함께 영벌에 처하게 된다. 그 때에 슬피 울며 비로소 지구라는 행성이나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가를 절감하지만 이미 때는 늦다.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들의 세계에도 진선미가 존재한다. 하나님 모르는 이들의 예술의 세계나 선행 등이다. 창조의 편린들인 셈이다. 그러나 그들을 담고 있는 프레임 자체가 지옥행 열차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대열에 속해 있음을 모른다. 아담의 타락으로 이렇게 오도된 세상에서 각성의 은총을 입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됨이 얼마나 큰 복인가. 십자가를 통해 내게 하나님 나라가 열리고 그 나라에 속하는 은혜가 임했다. 오늘도 하나님 위해서 살고 하나님 때문에 살고 있음을 새롭게 한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시 22:14-15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시 22편 서두(1절)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탄원과 같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22편을 기억하셨던 거다. 본문 역시 십자가에

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는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과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 경)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하만의 음모를 극복한

에 9:15-16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만이 부추긴 조서는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내의 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