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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2:7


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밧모섬에서 열린 하늘은 인간역사의 종말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보여주었다. 우리에게야 미래지사이지만 하나님의 예정에는 이미 정해진 결말이다. 이렇게 예고편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세상에 속지않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핍박을 받던 초대교회 성도들, 교회사 전 시대를 걸쳐 진리대결의 현장에서 핍박을 받았던 믿음의 선배들은 이 계시록에서 힘과 소망을 받으며 꿋꿋이 신앙의 절개를 지켜냈다.

어떤 사람들이 복있는 자들인가. 예언의 말씀, 즉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있는 자이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말씀을 붙들고 따르는 자가 승리의 줄에 서있는 것이다. 죽음 건너편에 뭐가 있을지, 보이지 않는 그 신이 진짜 존재하는지 안하는지의 여부를 놓고 고심할 수 있다. 이른바 종교성에 바탕한 구도의 자세이다. 성령님은 이 종교성의 수준을 넘어 깨달음에서 오는 확신을 가지고 영성의 차원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영성의 차원에 들어간 사람은 말씀을 지킨다.

말씀을 지식으로 알되 지키지 않을 수 있다. 지키려고 고민하기도 하고 애를 쓸 수도 있지만 정작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독교문화에 익숙한 것과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헤아리며 역시 그 사랑으로 말씀의 길을 가야 복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루가 천 년같고 천 년이 하루같은 분이시기에 재림의 때를 기다림도 상식적 시간개념과 질적으로 다른 차원일 수 있다.

언제가 되었든 무슨 상관이랴. 지금 여기에서부터 말씀을 지켜내는 길을 가면 그만인 것을... 순간순간 신뢰와 순종의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며 그러다보면 천국지점 같은 맛을 보다가 천국본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행실에까지 예언의 말씀을 지켜내는 온전한 변화를 소망한다. 나는 진정 말씀을 지켜내는 자인가. 주님 뵙기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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