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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ㅣ시편 63:3
[시63: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에게 열린 은혜가 영생이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다. 이 관계가 구원을 얻게 했으니 만일 이 구원이 없었다면 나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뻔 했을 정도다. 그러니 이 영생은 나의 생명보다 낫고 귀하다. 내 생명은 이 영생 안에서 비로소 참된 값어치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영의 세계와 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모두 이 비슷한 고백을 한다. 우선 바울이다.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짐 엘리엇도 동일하다. “어차피 붙들어 둘 수 없는 것을 내어주고 결코 잃을 수 없는 것을 얻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주의 구원은 내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를 것입니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을 만족케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내가 나의 침상에
매일 묵상ㅣ시편 61:5
[시61:5]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대체 다윗 정도의 은총을 받으려면 뭘 어케 해야 하나 하는 질문의 부분적인 답이 나온다. 다윗은 자신의 서원을 받으셨다고 말한다. 그 서원을 이행했다는 말이다. 그럼 어떤 서원이었을까. 추정컨대 우선 하루 세 번의 정시기도이다. [시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그 다음 하루 7번의 찬양이다. [시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물론 119편은 미상이지만 다윗의 전승으로 볼 수 있는 시편이다. 이러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의식하는 은총이 안 열릴 수 없고, 교제와 소통이 없을 수 없다. 비슷하게라도 따라갈 필요가 있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구원 이후의 축복은 이런 방식으로 애씀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약해질 때 땅 끝
매일 묵상ㅣ시편 59:16
[시59: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대적들이 죽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때에도 다윗은 아침에 주의 힘을 노래하며 주의 인자하심을 노래한다. 이것은 은혜다. 두려움이나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을 막는 영혼의 장벽이다. 사방이 대적으로 가득할 때 가장 최상책은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이다. 하루 첫 시작을 신앙고백으로 연다는 것은 능히 하나님을 감화시키는 유익을 준다. 그 결과의 폭은 크다. 최소한의 보호로부터 영광된 승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가 예비된다. 다윗처럼 연단을 겪게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 모든 상황은 하나님 손 안에 있다. 나는 모든 상황에서 주를 찬송하며 주의 이름을 높이고 주의 힘을 찬양할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위험에서 건지시고 깨어 살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힘, 나의 요새가 되어주시는 주 하나님의 성호를 만유 위에 높이 올려드립니다
매일 묵상ㅣ시편 56:4
[시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말씀을 찬송하는 신앙이 귀하다. 진정성 때문이다. 신을 의지하는 마음은 신앙인이 아닌 종교인도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종교인은 신의 존재도 인정하고 그가 절대자임도 인정한다. 그리고 종교생활도 맹렬히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과 열심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신앙인은 말씀을 단단히 붙잡는다. 감정이나 느낌을 넘어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따른다. 그래서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견고함을 지닌다. 이런 사람은 혈육을 가진 사람, 즉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다. 하나님과 한 편이 되어서다. 모든 상황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사람이나 환경이 나를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시고 나로 하나님 앞
매일 묵상ㅣ시편 55:22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짐 없는 인생은 없다. 짐이 있다는 것은 원치않는 일, 버거운 상황들이 닥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만 생각하면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신자에겐 바라볼 곳이 있다. 우리의 짐을 맡으시고 신자의 요동함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다. 기도로, 토설로 짐을 맡기자. 하나님은 기꺼이 짐을 맡아주신다. 마치 아이를 키우는 자상한 아빠와 같으시다. 하나님은 샬롬으로 신자를 붙드신다. 그 안에서 오뚜기처럼 일어나게 하신다.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심으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기도하며 인생의 짐을 맡길 것입니다 주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고 나를 치는 전쟁에서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의인의 요동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대적들을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신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매일 묵상ㅣ시편 52:8
[시52: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추적을 당하고 있는 도망자 신세임에도 다윗은 영적 정체성을 분명히 다진다. 주변 대부분이 사울의 시퍼런 서슬에 못이겨 다윗을 대적하는 위난의 상황은 두려움의 포로가 되게 할 수 있었지만 다윗은 그런 어둠을 과감히 뿌리친다. 자신을 하나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로 표현한 것은 오늘날 신자가 자신을 왕같은 제사장이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고백하는 것과 유사하다. 주님은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이같은 확신과 당당함을 가지기를 원하신다. 나도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와 같은 존재다. 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할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처럼 든든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영원한 안전이요 피할 바위가 되어주시는 주께 감사하며 그 선한 이름을 높여 드립니다
매일 묵상ㅣ시편 51:5
[시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초래했고,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심성의 타락, 욕구의 타락, 삶의 타락을 불러왔다. 컴퓨터의 운영시스템(OS)이 망가지니 전체가 오작동에 빠진 것과 같다. 하나님이 인간존재의 중심에서 사라지면서 인류는 죄의 쳇바퀴에 빠져버렸다. 죄의 법이 심성을 장악하고 삶을 주관하면서 온갖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다. 본문은 대를 이어 나타나는 그런 현실을 간략하게 압축했다. 빛이 사라지니 바로 어둠이 된 것이다. 빛이 임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상하고 통화하는 마음으로 주를 찾으며 온전한 번제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구원
매일 묵상ㅣ시편 50:23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옳은 행위다. 사실 햇빛과 공기 만으로도 감사의 출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이외에 누리는 복, 주신 복들은 쌔고 쌨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결핍에 집중한다. 생존본능 때문이다. 아버지없는 고아의 심리는 두려움이 지배한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해서다. 감사는 그것을 받는 주체가 있을 때 값진 의미를 지닌다. 성경이 감사를 대놓고 상기시키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셔서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요 양육자이시며 후견인이 되신다. 좋은 것은 모두 하나님께로 나왔고 또 나올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자.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이에게 서원을 드리고 갚을 것입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매 나를 건지시고 나를 영화롭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해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시고 아름다운 시
매일 묵상ㅣ시편 49:11
[시49:11]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에덴의 타락은 사람의 심성과 가치관에 엄청난 왜곡을 불러왔다. 하나님과의 결별이 이렇게나 생각을 뒤집어놓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영적인 존재가 물질에 매인 존재가 되었고, 영원과 통하던 존재가 저주받은 땅에 집착하는 존재가 되었다. 누구든 예외없이 죽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접하면서도 자기는 영원할 거 같이 현실적 안정과 성취에 계속 빠져든다. 이제는 그런 방식이 진리처럼 되어 그러지 않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 시편기자는 이런 흐름에 각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헛된 영광이 아니라 영원히 빛날 영광을 찾으라 권한다. 땅의 것에 연연하는 이 집단집착의 풍조에서 마음과 삶을 간수해야 한다.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영접하사 내 영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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