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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ㅣ시편 101:2
[시101:2]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완전한 마음이란 하나님을 향하여 나누이지 않은 마음을 가리킨다. 완벽한 마음이 아니라 이중성이 없는 마음이다. 욥이 대표적이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지향성은 분명하다. 연약함이 있지만 배신하는 마음은 없는 내면을 말한다. 특히 요한 웨슬레는 이런 마음이 성령의 감화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동감이다. 성령의 도움없이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향신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본문에서 다윗은 이런 은혜가 풀어질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완전한 길을 주목하여 힘쓰는 것이다.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성령님의 내적 조명에 집중하려 힘쓰는 일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첩경이다. 비천한 것을 눈 앞에 두지 아니하고 완전한 길에 주목하겠습니다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들로 함께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게 하시는 주 여호와
매일 묵상ㅣ시편 100:4
[시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창조자요 만유의 주재가 되신 하나님을 여호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은혜를 입은 자이다. 이 선제적 은혜만으로도 감사를 드려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모든 상황에서다. 이미 영원은 열렸고, 영생을 누리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영으로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은 까닭이다. 다윗이 63편 3절에서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다고 선포한 이유이기도 하다.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감사로 하루를 보내는 삶을 드리려 해보자. 감사와 찬송으로 여호와를 섬길 것입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넘치게 하사 여호와의 궁정에 영원히 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소유삼으시며 목자같이 나를 양으로 기르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합니다.
매일 묵상ㅣ시편 90:4
[시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하나님의 시제와 사람의 시제는 당연히 차원다르다. 세상의 천년이 주에게는 밤의 한 순간이다. 특히 영원의 관점에선 인간의 역사 전체라해도 하나님에겐 한 순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재림이 언제인가 설왕설래하지만, 성경은 그저 ‘곧’ 이라고 한다. 주님에게 ‘곧‘이 우리한테는 수천년인 셈이다. 신앙의 방향이나 진행도 하나님의 시제 관점에서 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지않으면 가시적 세상풍조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이런 관점의 은혜가 임한다. 그래서 영혼을 간수하며 영원을 소망한다. 아침의 돋는 풀같은 인생을 넘어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주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아침부터 주의 인자하심을 베푸사 저를 만족케하시고 일생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사 주의 영광을 자손에게 나타내게 하시
매일 묵상ㅣ시편 89:26
[시89:26]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고백이다. 하나님과 합한 마음을 지녔던 그였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언약을 지키며, 늘 하나님 편에 서려했던 사람이다. 완벽이 아니라 지향의 마음을 놓지 않은 것이다.사울과 금방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의 후손이 다윗의 길을 떠났을 때 재앙이 닥쳤다. 지향하는 바, 사랑이 향하는 바가 다윗과 달라서 일어난 일이다. 시인은 그것을 탄식한다. 우리가 진토임을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일관된 지향의 마음을 귀히 여기신다. 하나님에겐 흠결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다. 오늘도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지향하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내 존재의 근원이며 기초임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저를 택하시고 언약을 내리셔서 영원히 저의 걸음을 간수하시고 함께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기이한 일을 행하시고 은총을 부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진
매일 묵상ㅣ시편 88:12-13
[시88:12-13] 흑암 중에서 주의 기적과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88편은 전체적으로 어둡다. 흑암과 잊음이 있는 반면, 소망은 희미하게라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토설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른바 감정의 기도다. 있는 그대로, 가진 그대로를 토로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간혹 이런 기도가 필요하다. 하나님 시점에선 하나의 과정이다. 건축으로 치면 토목공사를 하는 것과 같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뭔가는 일어나고 있다. 주님을 향해 옮겨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두워도 기도를 잊지 않는다. 이것이 중요하다. 모든 상황 속에서도 아침의 기도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본성이 구원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에서 구원 역사를 이루실 줄을 압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손을 들게 하시는
매일 묵상ㅣ시편 83:1
[시83:1]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정의와 공정을 의식한다. 심지어 죄중에 있을지라도 외면하지 못한다. 창조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양심을 외면한 채, 악이 거세게 기승을 부릴 때면 이같은 기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개입을 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그들은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그것이 출애굽의 시작이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통로가 된다. 거룩한 빌미인 것이다. 구조적인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을 보며 무력감만을 느낄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서 범사에 개입하시는 길을 터놓겠습니다 공의를 회복시키심으로 주를 대적하는 무리들이 낭패를 당하게 하십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님만이 온 세계의 지존자이시며 주권자가 되십니다
매일 묵상ㅣ시편 82:3-4
[시82:3-4]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면서도 정의의 구현, 공정의 실천을 자주 강조하신다. 본성적으로 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약자를 천대하지만 하나님은 약자의 입장에 서신다.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공유한다. 공의를 베푸는 일에 참여하거나 돕는 일은 하나님의 성정에 참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철저히 비폭력을 원칙으로 한다. 힘있는 자들에 대한 책임의 강조와 공정을 향한 촉구는 구약시대 예언자의 전승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진 하나님 법도의 적용이기도 했다. 이 맥락에서 사도 요한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하기를 권했다(요일 3:18). 실천이나 중보, 둘 다든지 아니면 둘 중 하나는 실행해야 한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가 구현되는 일이 더욱 많아
매일 묵상ㅣ시편 81:10
[시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애굽을 꿇리고 가나안을 주신 것은 분명한 메시지를 지닌다. 주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다른 신에게 입을 열지말고 오직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야 하는 것이다. 세상도 채워주는 게 있지만, 종국의 대가가 뼈아프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은 그렇지 않다. 금생과 내세에 복이 되는 것이다. 신앙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며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하셨다. “내가 채우리라” 내 인생에서 다른 신을 두지 않고 이방신에게 절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와주시고 내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나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셨습니다 내게 기름진 밀을 먹이시고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만족시켜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합니다
매일 묵상ㅣ시편 80:19
[시80: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주의 얼굴은 주의 임재를 말한다. 그 얼굴의 광채는 임재로 말미암은 은총들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환난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킨다. 환난의 때에 시인은 주의 얼굴을 구한다. 특히 그 환난이 과오로 인한 것일 때 우선 주님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한데, 회개가 그 길을 튼다. 만일 순전히 대적으로 인한 것이라면 주의 권능을 구했을 것이다. 주의 얼굴을 구하면 그 얼굴 빛이 인생의 보호막이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얼굴로 얼굴을 대하는 자리에 있기를 원하신다. 오늘도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요셉을 양 떼같이 인도하신 이스라엘의 목자이신 여호와를 전심으로 따를 것입니다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께서 저에게 얼굴 빛을 비추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오른 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손을 얹으시는 만군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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