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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5일


 

민 23:21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수도 없이 이스라엘의 허물과 반역을 겪으신 분이시다. 그 때문에 땅이 갈라져 사람을 삼키고 불뱀들이 날라다니는 일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어찌 보지 않으셨다 하시는가? 공동체의 한 부분이 무너졌다해서 전체가 끝나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부상을 입을 수 있고, 부분 마비가 올 수 있지만 여전히 그 사람은 그 사람인 것과 같다. 이스라엘에 부분적인 문제가 있긴 했지만 여전히 사랑의 대상이었다. 대소변 못가려도 사랑하는 내 새끼인 것이다. 속상했지만 곁은 떠나지 않으신다. 그 '내 새끼'를 누가 건드리면 가만 안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면 누가 치루든 대가는 치루게 되어있다. 회개안하고 버티다가 내가 치루느냐, 은혜 구함을 보시고 주님이 대신 치루시느냐가 있을 뿐이다. 여호수아와 갈렙 그룹은 못되어도 고라나 불뱀 쪽에 가면 안될 일이다. A에서 D까지는 패스해서 진급이 가능하지만 F는 되돌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그들은 광야의 연단을 신뢰와 순종으로 통과해낸 사람들 아닌가? 이 본문은 사실 지금 남아있는 사람, 앞으로 남아있을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런 섭리를 담은 말씀이 발람을 통해 선포되었다는 것은 한 편 아쉽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점을 객관적으로 분별했을 것이다. 허물이 많았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새끼들'임에 틀림이 없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다. 기왕이면 '야단맞는 새끼'보다 '쓰담받는 새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신앙과 목회의 길을 걸어오면서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면서도, 만만치 않은 분임을 절감했다. 기다리시면서도 깨달아야 할 부분은 그냥 넘기지 않으셨다.

나의 허물, 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늘 은혜를 구하며 가까이 나아가는 자에게 주시는 그 은혜가 오늘 저에게도 충만하나이다. 그래서 오늘도 가까이 나아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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