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눅 22:24-27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누가 크냐?' 12명 모였을 뿐인데 그 안에서 지위경쟁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크냐는 질문은 누가 더 높으냐는 질문입니다. 높이와 사이즈에 관한 관심은 인간에겐 본성적입니다. 문제는 그 본성이 타락한 가치관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방인의 임금 중 대표자는 로마황제입니다. 종종 그들은 자신들을 제국과 백성들에 대한 '은인'이라고 호칭했습니다. '너희들 내 덕에..' 라는 생각이 깔린거지요. 정작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거나 유지하기 위해 저질렀던 음지에서의 악행은 얼마나 심각했는지 모릅니다. 정복하고 짓밟고 제거하고.. 등등. 그들에겐 권력과 돈과 지위가 최고였습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가치관으로 물든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심으러 오셨습니다. 그 가치관은 썩어질 권력과 돈과 지위가 최고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가까운 자가 최고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에게 가까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은혜 안에서 섬기는 자요, 사랑 안에서 겸손하고 온유한 자입니다. 바울은 그런 캐릭터를 성령의 9가지 열매로 더 세분화해서 알려주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높은 자는 권력과 돈과 지위가 쎈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성령의 9가지 열매로 섬기는 자입니다. 2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게 40평 짜리로 이사갈 상황과 겸손의 캐릭터가 깊어지는 은혜가 임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축하받을 일일까요? 조금 더 나가보겠습니다. 20평 사는 사람에게 40평 짜리 아파트와 진급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옆집 사는 같은 교우에겐 인생에 우환이 들어와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리는 영성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축하받을 일일까요? 세상은 평수가 넓어지고 지위가 오르는 것을 축하받을 일로, 우환당하는 것을 비극으로 생각하겠지만 하나님 나라는 거꾸로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종류의 계기가 되었든 겸손의 캐릭터, 순종의 영성이 깊어지는 쪽을 진심으로 축하하십니다. 좀 더 확실하게 하자면 좋은 회사에서 진급한 것도 축하할 일이지만 그보다 더 축하받을 일은 실직을 당했어도 하나님께 더 의존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진급보다 실직을 더 축하해주는 곳이 하나님 나라요 교회입니다. 가치관이 다른 것이지요.

은정은 세상가치관을 디톡스하는 곳입니다. 누가 크냐, 누가 높으냐는 질문은 접어야 하는 곳입니다. 대신 누가 더 섬기냐, 누가 더 낮아지느냐 라는 질문이 중요한 곳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고, 섬기는 자'로 계십니다. 그런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면 우리 역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대형/중형교회에서 일하면서 내성적 스타일에다 사역과 연구에 쏠리다보니 교제의 차원에서 오해도 종종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경우, 교회문화에 묻히듯 처신한 적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개척목회를 의지적으로 선택하면서 확실히 낮아지는 길로 행했습니다. 내면에서 섬김에 대한 치열한 가치관디톡스과정이 있었음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은정을 시작하며 리더의 기능과 역할은 충실하되 섬김의 자리에 있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리더로서 적극적으로 기능하고 역할하는 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충성입니다. 주님에 대한 충성이요, 소명에 대한 충성이지요. 그러나 높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가 교만입니다. 리더에게 틈타기 쉬운 것이 이런 교만입니다. 십자가 전 날, 제자들은 김칫국을 부지런히 마시며 교만의 나래를 펴고 있었습니다. 3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면서도 말입니다. 본성을 점령한 세상가치관의 위력은 이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일이 생겼든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께 더 순종하게 되었으면 그게 최고의 축복입니다.

내 안의 썩어질 가치관을 디톡스하며 일관된 섬김의 삶을 살기에 힘쓰렵니다.

#정재우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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