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영성 - 물두멍이야기
물두멍이야기 5
물두멍영성은 은정의 브랜드영성입니다. 교훈적이고 지식적인 묵상보다 나의 연약함을 다루는 실존적 묵상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각자 물두멍 앞에선 제사장의 절실함으로 자신을 돌이키며 연약함을 주님 발치에 내려놓고 적용의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묵상이 나날이 쌓이면 어느새 나의 영성은 하늘을 향해 올라갑니다. 환경은 그리 변함이 없는 것 같아도 원형계단을 올라가는 것 같이 영성은 깊어지고 성숙해지지요. 은정 가족들은 필수적으로 날마다 물두멍 앞에 서야 합니다. 성숙해지는 길, 아니 사는 길이요 평안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물두멍 앞자리는 은혜의 이슬비에 옷을 젖게 하는 자리입니다. 은혜의 이슬비지만 매일매일 맞으면서 어느새 은혜장아찌가 되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조금씩 조금씩 더 강해지게 됩니다.
공동체 나눔은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일까요? 앞으로 제가 하려는 사역 중 하나가 글쓰기 치유입니다. 시든 에세이든 형태에 관계없이 글을 쓰면서 내면의 치유를 꾀하는 것이지요. 이미 음악치유나 미술치유처럼 치유프로그램의 한 형태로 자리잡은 분야입니다. 왜 글쓰기가 치유를 가져올까요?
먼저는 내면의 상태를 직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직면, 곧 '드러냄'은 모든 치유의 기초이며 기본입니다. 병원에 가서 약한 부분을 말하지 않거나 보여주지 않고 온전한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상담에서 자신의 내면의 어떠함을 드러내지 않으면 상담의 효과는 거둘 수 없습니다. 직면은 치유의 필수입니다. '글을 씀'은 모호했던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그 실체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글을 씀'은 어중간하게, 구렁이 담넘듯 하게 하지 않습니다. 명료하게 빛과 어두움을 정리하며 양지와 음지를 구별하게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듯 내면이 정리가 되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글쓰기는 마음리셋의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두번째로, 드러난 것은 치유되거나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 드러난 부분은 가능한 치료합니다. 주님도 드러난 것을 만지시지요. 우리는 그것을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드러내면 빛이 들어옵니다. 인생의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린 사람들이 글쓰기를 통해 불행에서 행복으로 전환된 사례는 무수합니다. 진솔한 글쓰기는 처음에는 내가 쓰다가 어느새 글이 나를 쓰는, 글이 나를 새롭게 빚어나가는 단계로 나아가게 하지요. 더우기 살아계신 하나님의 불변의 진리에 비추어 나를 드러냄은 가장 강력한 치유와 변화의 전환점이 됩니다. 진리가 나를 위로하고 나를 치유하고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 앞에서 - 물두멍 앞에서 - 나를 드러냄은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두뇌유전자 형질을 믿음과 긍정의 형질로 바꾸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매일 말씀에 대해 읽고, 쓰고, 다듬는 묵상패턴은 생각과 마음과 행동과 습관이 달라지게 하는 가장 선하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야단맞거나 혹독한 연단을 받지않고도 삶의 길을 바꾸어나가는 최고의 방법이지요. 글쓰기는 생각에서 머무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뭔가를 글로 정리한다는 것은 최강도의 각인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길을 가다보면 못보던 것을 보게 되고 못느끼던 것을 느끼게 되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쓰기의 좋은 점은 깨어있으면서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지요. 해리 포터 시리즈를 터뜨린 조앤 롤링도 괴로운 시절, 자꾸 글을 써가면서 결국은 인기작의 실마리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하지요. 만약 그녀가 고단한 일상에 파묻혀 끙끙대기만 했다면 그런 대박은 없었을 것이구요, 쪽박 수준을 면치못했을 것입니다. 그냥 글쓰기도 이런 길을 연다면 진리 앞에서 글을 쓰는 것은 얼마나 큰 유익이 있겠습니까?
공동체 나눔은 양의 많고 적음을 떠나 우리를 이런 영역으로 인도합니다. 은정의 마당을 통해 열어놓으신 변화와 치유와 형통의 길로 거듭 초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