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20: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전쟁을 수행할 때, 주변 족속들에게는 조공관계를 권하셨지만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헤렘, 즉 진멸을 명하셨다. 우상숭배가 전염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우상숭배의 현상은 가나안 땅이나 그 주변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이스라엘이 거주하게 될 땅에는 한치의 용납도 허락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시는 영역에서는 죄의 씨를 말려야 한다. 남겨두었다간 전염되어 먹히기 쉬워진다. 실제 가나안 정복 이후의 역사가 그랬다. 부패한 본성과 그 그늘을 파고드는 사탄의 집요함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구별하신 영역에서는 가능한 한 우상의 흔적을 철저히 지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세상의 대표적 우상이 돈과 힘이다. 그 우상 앞에 인간들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무너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것들이 지니는 현실적 위력이요, 또 하나는 그것들에 짝하는 내면의 탐심이다. 영성이 여물지못하면 이 둘이 엮어내는 시너지를 이겨내기 쉽지않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무너진 것처럼 교회를 출입하면서도 얼마든지 내면은 망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진리와 성령을 받으면 신실함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상이 이스라엘을 덮었을 때도 신실함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남은 자’라 부른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기업이 된 그들의 영혼을 절개로 지킨 이들이다. 오늘날도 남은 자의 각오를 가지면 정신적 헤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길을 가려고 힘써야 한다.
‘헤렘’의 엄격함은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해서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된다. 긍휼을 느낄 수 없는 까닭이다.인본주의자들이 지옥의 개념을 비판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바퀴벌레는 빛을 피한다. 빛이 몰아내서가 아니라 빛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죄성의 그늘에 덮혀 진리의 빛을 싫어하는 영혼들은 천국이 추방해서가 아니라 천국의 빛에 적응이 안되어 어둠으로 떨어져 나간다. 즉 내면의 어떤 상태는 빛과 어두움 중에서, 혹은 빛에 가까운 쪽이나 어둠에 가까운 쪽 중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맞는 쪽을 선택한다. 헤렘의 개념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의 하중이 클 수록 내면상태의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심지어 그 개념이 싫거나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지적한 바다. 반면 애통한 마음이 든다면 소망이 있다. 예수님께서 팔복에 언급하신 바다.
롬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