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4: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수석제자였고 가롯 유다는 재정담당이었다. 수제자나 재정책임은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 자리이다. 둘 다 예수님의 측근이자 당연히 목숨걸고 따르는 충성파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두 사람 다 예수님에게 배신을 때린다. 베드로 역시 주와 함께 죽을거라 큰 소리를 쳤지만, 그리고 진짜 그렇게 할 거 같았지만 위기가 닥치자 주님을 부인한다. 결국은 자아가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 자아가 손상당할 거 같자 주님을 모른다고 한다.
사랑의 대상이 달랐다. 가롯 유다는 자기 신념을 사랑했고, 베드로는 자기 목숨을 사랑했다. 주님을 사랑안했다고 할 수 없지만 자기를 더 사랑했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손해가 다가온다고 느끼자 주님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환난과 연단을 통과하지 않은 신앙을 보증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다는 자기 길을 갔고 베드로는 회개했다. 회개한 베드로가 순교당할 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라고 요청한다. 예수님처럼 바로 매달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 목에 칼이 들어올 때 과연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내가 가진 신념과 다른 양상으로 일이 벌어질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연단을 받지만 가장 중요한 도전은 자아가 건드려질 때이다. 초대교회는 이런 시련을 통과하면서 세워졌다. 강력한 공권력을 지닌 로마제국의 핍박을 두 세기 이상 받으면서 철저하게 신앙의 순전성을 간직하도록 연단을 받았다. 모든 시대의 교회가 초대교회의 재현을 꿈꾸는 것은 이같은 순전한 신앙 때문이다.
연단은 나의 신앙을 정화한다. 주님을 모시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다듬어가게 한다. 연단은 나를 성숙하게 하고 순전하게 한다. 오늘도 혹시 은연 중 진리의 요청을 부인하는 일은 없는지 살핀다.
*말씀기도
진리의 빛으로 나를 비추사 환난이나 연단이나 미혹을 이기고 순전한 신앙으로 주를 따르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