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 2:20-21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본문은 히 6:4-6 과 함께 신약을 정경화하는 과정에서 민감했던 부분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사람이 다시 타락할 수 있는가의 문제 때문이다. 히브리서에는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로 언급된다. 칼빈이 말하는 ‘영원한 안전의 교리’에 의하면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 그 구원은 버림받거나 다시 타락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본문이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 사도 요한은 그 속사정을 이렇게 말한다. 요일 2: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그들이 교회에 있다가 나갔으나 사실상 원래부터 하나님에게 속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데마는 한 때 바울과 동역했지만 나중엔 ‘세상을 사랑하여’ 교회를 떠났다. 동역했다는 것은 피동적으로 예배를 드린 것과 다르다. 말씀을 전하거나 사역까지 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곡같이 보이는 가라지였던 것이다. 모태신앙의 경우도 개인적인 중생체험을 하기 전까진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아니다. 교회 문화에 익숙할 수 있고 봉사도 할 수 있지만 맛보기 수준에 불과하다.
앎이 지식이나 관념의 수준에 그치면 영생을 보장받기 힘들다. 은사체험도 영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출애굽 1세대 중 광야에서 배역하다 죽은 자들은 엄청난 능력을 체험하고도 하나님에게 대들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자들 중 어떤 이들은 당신과 상관없을 수 있음을 밝히셨다(마 7:22). 세계관과 가치관이 확실히 복음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위험한 이유가 여기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저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말씀에 담긴 진리와 아가페 사랑 안에서 더욱 검증되고 변화받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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