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창세기 22:12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백 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아브라함은 군소리없이 순종한다. 제단을 만들고는 아들을 묶어 올리고 칼을 든다. 여호와의 사자가 말려 피를 보는 데에까지는 안 갔지만 사실상 바친 것과 다를 바 없다. 종종 하나님께서 내 속을 들여다 보실 때 그 시험은 분위기를 잡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내 속을 환히 드러내는 수준까지 진행된다.


하나님도 나도 서로간의 실상을 여과없이 알게 되면서 연단은 클라이막스에 이른다. 비슷한 시기에 욥 역시 시험을 받는다. 실제로 그의 자녀들은 사고사를 당했다. 그로인해 하나님과의 신뢰관계가 엄청난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면서 상심 자체를 넘어서는 반전이 일어났다. 아브라함과 욥이 가르쳐주는 핵심이 있다. 피조물에겐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바 ‘밭에 감추인 보화’다.


만일 아브라함이 순종하지 않고 버텼다면, 욥이 영생의 세계를 알지 못한 채 상심에 빠져 하나님을 등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들은 거기까지 안 갔을 것이다. 그 심령이 하나님의 공백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불화의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영혼은 복되다. 선택받은 증거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자.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애 3:17-18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예레미야의 탄식은 유다의 아픔에 동일시하는 탄식이다. 누군가를 향한 중보가 깊어지면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며, 그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 된다. 그의 안위 또한 자신의 안위가 되기에 그를 끊으

애 2: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령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너뜨리사 원수가 너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며 네 대적자들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한 모세의 우려가 담긴 대목이 있다. 신 31: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애 2:5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애 2: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회개하지 않는 죄는 주님에게 원수같이 되어 진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