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창세기 8:20

창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곧바로 희생제물을 취하여 번제를 드린다. 제물의 죽음은 대속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희생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용납되었다. 그 시초는 타락한 아담의 몸을 가리우기 위해 가죽 옷을 마련하시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사는 은혜를 구하는 통로요 은혜를 풀어내는 하늘의 통로다.


거대한 홍수가 무자비하게 휩쓸고 지나간 땅은 보기에도 심란했을 것이다. 환경적으로 생존과 생계에 대한 염려, 두려움과 걱정 등 복합적 소회가 노아 일가의 마음을 눌렀을 수 있다. 노아는 그 시점에서 제사를 드렸다. 이는 예배 우선의 마음이며 절대의존의 표시이다. 모든 상황 속에서 예배자는 마음만이 아니라 예배의 실행 자체도 중요하다.


제물이 된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는 땅에 내리자마자 죽임을 당한다. 그들의 데스티니는 제사, 곧 예배였다.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데스티니를 이루는 것이다. 아벨은 예배를 잘 드린 까닭에 일찍 죽임을 당했다. 열납될만한 예배를 드림이 아벨의 데스티니였다. 희생 제물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산 제물처럼 드려진 셈이다. 히브리서에서 그는 의인으로 평가된다(히 11:4). 하루 해와 모든 일을 예배로 시작함이 얼마나 은혜인가. 가장 지혜로운 처신이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삼상 22: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진언하고 있다. 추상같은 때에 목숨을 건 일이었지만 진실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왕의 광기가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이 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을 중심으로 아둘람공동체가 세워진다. 환난 당한 자들과 마음이 원통한 자들로 인생의 출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윗에게서 그 출구를 보았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다윗임에도

삼상 20: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기득권을 포기한 우정, 아버지와의 분리를 각오한 우정으로 다윗은 살았다. 결국 이 우정이 훗날 다윗을 왕위에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