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수도원 전통에서 유명한 ‘예수기도’(Jesus’ Prayer)의 원형이 본문에 등장한다.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했던 대목이다. 자신을 의롭다고 여겼던 바리새인은 그 근거를 열거하며 자신감있게 하나님을 대했다. 세리는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만 치다가 성전을 나왔다. 그에겐 죄인됨의 자각에서 온 애통함이 있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았노라고 말씀하신다. 바리새인들이 지배계층이었던 당시 이스라엘의 기준에선 충격적인 해석이었을 것이다. 사실 구약성경에선 여러 차례 언급된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주님 역시 산상수훈에서 이 대목을 분명히 하셨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임재 앞에서 사람의 의란 정오의 태양 앞에 촛불과도 같다. 설령 의가 있다할지라도 그 ‘의’ 역시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주어질 수 없는 타력의 은총이다. 은혜의식에 바탕하지 않은 의로움은 복이 아니라 덫이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온전한 반응은 죄나 죄성을 자각한데서 오는 애통함이나, 은혜를 각성한 데서 온 감사함이다. 내 안에선 어느 쪽이 더 눈에 들어올까. 자신감일까, 애통함일까. 타인일까, 나 자신일까. 참된 신자는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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