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누가복음 7:37-38


눅 7:37-38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역력히 드러나는 본문이다. ‘죄를 지은 한 여자’와 ‘바리새인’의 모습이다. 그 여자는 울며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는다. 예수께서 죄의 빚을 청산해주셨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이 여인이 앞서 복음을 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인의 애통함에 비해 바리새인에게선 자신감이 엿보인다. 느긋하다.


이는 십자가를 대하는 현대인들의 태도와 유사하다. 십자가 앞에서 눈물 짓는 이가 있는가하면 십자가 앞에서 느긋한 사람들도 있다. 죄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신자는 이 여인과 바리새인 시몬 사이 그 어디쯤 자리한다. 나는 어떨까. 나는 여자 쪽인가 시몬 쪽인가. 아니면 오락가락인가.


빚을 탕감받았다고 여기는 자는 옥합을 깨어 향유를 붓는다. 단지 지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애통함과 감사한 마음이 있고 그에 따른 예배와 섬김이 있다. 물론 종교성에 바탕한 예배도 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그래서 애통함으로 긍휼을 바라며 드리는 예배가 진정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오늘의 현장은 예배의 현장을 대변한다. 눈물이 은혜다.



Recent Posts

See All

베드로후서 3:8-9ㅣ6월 15일

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철학자나 물리학자들에게 시간 이해는 중요한 주제다. 과거와 현재, 미래로 단순 분

베드로후서 2:20-21ㅣ6월 14일

벧후 2:20-21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그리스도를 알았는데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배도를 경계한다. 이 때의 앎은 지식적이고 관

베드로전서 2:3ㅣ6월 13일

벧후 2: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이단은 처음엔 비슷하나 갈수록 달라진다. 결국은 지어낸 말로 미혹하는 단계에 이른다. 진리의 무장이 허술한 상태에선 온갖 공을 들이면서 파고드는 이들의 작전을 물리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의 배후에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