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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3:16


눅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세례 요한이 성령과 불의 세례를 예고한다. 그는 그런 차원 다른 세례를 어떻게 알았을까. 선지자들에겐 일종의 비관주의가 있다. 아무리 외쳐도 변하지 않는 부패한 본성의 속성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심판에까지 연결되고 마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들은 슬픈 마음을 가졌다. 눈물의 선지자로 불렸던 예레미야가 대표적 경우이다.


요한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물세례 한 번 받는 것으로 죄성이나 세상성을 정리될 것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메시아는 더 근본적인 대책을 베풀어주리라 기대했을 수 있다. 물로 씻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불로 태워야 할 것이고, 마음을 불로 태우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소관이다. 물세례가 속죄의 차원이라면 성령세례는 성화의 차원을 열어준다.


물세례는 회심의 증표다. 마음을 주님께 돌이켰다는 증거다. 돌이킨 마음 속을 정화하는 것은 불의 세례가 필요하다. 중생하게 하신 성령께서는 중생한 신자의 내면을 정화하시기 위해 불과 같이 역사하신다. 그를 통해 부패한 영혼을 성전으로 리모델링하시는 것이다. 성령과 불의 세례를 받아야 임재와 연합의 은총이 깊어질 수 있다. 나의 마음은 성령께서 편안하게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있는가. 아니면 시장판같을까. 성령의 불은 내게 매일 필요한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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