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3:13-14

출 33:13-14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노여움을 돌이키시자 모세는 하나님 마음을 얻기위해 한 걸음 더 나선다. 그는 주를 알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주님이 하신 일을 아는 것과 주님을 아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언젠가 소그룹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과 아버지의 손을 보는 것이 다름에 대한 나눔을 가진 적이 있다. 출장 다녀온 아빠를 대하는 경우, 손에 든 선물에만 관심이 있는 아이와 아빠 자체가 반가운 아이의 차이였다.


모세의 중보로 마음을 돌이키셨을 때 하나님은 가나안 땅은 주겠지만 당신은 함께 가지 않을거라 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탄원했고 이제 친히 가리라 응답하신다. 가나안 땅도 은혜지만 더 큰 은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다. 가나안 땅이 아빠의 손에 든 선물이라면 함께하심은 아빠 그 자체를 의미한다. 모세는 손이 아니라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손을 보는 영성과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영성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 신앙의 평생 과제인 거 같다. 찬양의 가사로는 얼굴을 구하지만 실제 마음은 손에 집중하는 연약함이 엄연하다. 모세는 그 연약함을 넘어섰다. 그는 주를 깊이 알기를 원했다. 깊이 사랑하고 교통하기를 원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얻기를 원하는 마음을 드리자 임재와 안식을 약속하신다. 오늘 나의 시선의 향방을 돌이켜본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방언(5)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예언과 방언은 그 활동이 그치는 때가 온다. 은사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한시적인 도구인 것이다. 이들은 생래 부패한 본성과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의중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연약함으로 인해 주어졌다. 또한 사탄의 공격과 세상의 미혹으로부터 자신

방언(4) 롬 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께서 신자를 위해 대신 기도하시는 것을 ‘대도’라고도 한다. 방언은 대표적인 대도이다. 방언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는 기도로서 나의 지성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헤아리시고 채워주시려는 은총이다. 방언이 많을 수록 좋

방언(3)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방언은 기도 방언이 있고 예언의 기능을 하는 방언이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통역이 뒤따른다. 은사가 역동적이었던 초대교회에는 이런 사례가 흔했던 거 같고, 바울은 세 사람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되 차례를 따라 조화롭게 통역할 것도 권했다(14:27). 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