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바울의 십자가 영성은 죽음에 대한 강조가 크다. 물론 그 뒤에 예수님과의 연합이 따라오는 것은 물론이지만 죽음의 과정이 허술해선 안 되겠기에 연합조차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감당하는 은혜 쪽에 초점이 기울어진 감이 있다. 그에 비하면 사도 요한은 보다 더 연합에서 오는 측면을 부각시킨다. 사랑의 포인트도 그러하거니와 연합이 주는 축복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루는 특징이 있다.
가장 정점을 이루는 것은 계시록이다.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장차 누리게 될 엄청난 영광의 때에 대한 증거는 찬란하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예수님과의 연합이 주는 의미도 승리롭게 다룬다. 그에 의하면 나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한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 그 분은 세상에 있는 자, 곧 세상의 임금인 사탄보다 크신 분이다. 내가 속한 그 분, 내 안에 계신 그 분으로 인해 나는 사탄의 세력을 이기는 존재가 되었다. 사탄에 대해서도,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관건은 내 안에 계신 그 분으로 나를 통해 나타나게 하고 드러나게 하는데 있다. 그게 안 된다면 나중에 천국은 갈지라도 지금 여기에선 승리를 누릴 수 없다. ‘죽음’과 ‘들음’의 영성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그 분이 드러나지 않으며, 내가 듣지 않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분 앞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구하기 위해서도 머물러야 하지만, 소통하기 위해서도 머물러야 한다.
성경을 통해 내 안에 계신 그 분의 사이즈를 헤아리고 실력을 파악하며 나를 향한 그 분의 사랑을 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알게 된 진리가 나를 자유하게 하고, 나로 승리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주 그 분을 구하기보다 그 분이 줄 수 있는 것에만 쏠리는 연약함을 느낄 때가 많다. 마음의 초점이 하나님보다 환경에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가장 크신 분이 계시고 나를 통해 당신 수준의 일들이 펼쳐지기를 원하신다.
*말씀기도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를 붙드시고 나를 통해 일하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