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11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신자의 교회 생활에 대한 권면이다. 근신하여 기도하고(7절), 뜨겁게 서로 사랑하며(8절),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해야 하는데(10절), 말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봉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권한다. 지향점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 나의 언행심사가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성령께서 내 안에서 도우신다.


공동체 생활에서 영과 혼과 육의 수준이 있는 거 같다. 육의 수준은 죄성과 육성이 말하고 행동하는 수준이다. 혼적 수준은 이성이 주도한다. 매너가 좋지만 아가페를 느끼기 어렵다. 영적 수준은 성령님의 주도를 받는다. 아가페 사랑이 흐른다. 육성과 이성이 나의 과거였다. 예수님을 알면서 영성의 영역에 들어섰다. 하나님은 육성과 이성을 넘어서 사랑에 바탕한 영성적 삶을 살라하신다.


신자의 언어생활도, 봉사생활도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존해야 한다. 공동체에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육성과 이성이 영성을 눌렀기 때문에 발생한다. 육성은 혈기를 내게 하고 이성은 판단과 정죄가 앞선다. 반면 영성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8절). 그걸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바울의 말처럼 나의 혼과 육은 의지적 통제가 필요하다. 오늘도 언어와 봉사에서 주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구한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시 22:14-15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시 22편 서두(1절)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탄원과 같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22편을 기억하셨던 거다. 본문 역시 십자가에

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는 연대기적으로 스룹바벨이 주도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과 에스라가 주도한 2차 포로 귀환(B.C. 458년 경) 사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하만의 음모를 극복한

에 9:15-16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만이 부추긴 조서는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내의 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