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9:2-3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감잡을 수 있는 신비한 사건이었다. 모세와 엘리야도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서 제자들의 마음은 벅차 올랐을 것이다. 이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 일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하나님의 보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초월의 체험은 든든한 요새처럼 마음을 지키게 한다. 우리에게 종종 초월을 허락하시는 이유이다.
신비주의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신비체험은 신앙과 소명의 길에 귀한 동력이 된다. 바울도 삼층천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장차 거하게 될 그 곳을 미리 보았으니 이 땅의 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망은 더욱 강해지며 신앙의 배짱은 더욱 두터워진다. 베드로는 훗날 이 체험을 상기하며 핍박에 직면한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소망을 지킬 것을 권유한다.
벧후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은총은 받은 만큼의 사명을 가지게 한다. 초월을 맛보지 못하면 지식이나 교리로 행하기 쉽다. 옳은 말은 하지만 결국 맛보지 않은 과일의 맛을 설명하려는 것처럼 공허함이 있다. 성령충만도 초월체험에 속한다. 이 시대는 갈수록 그런 은혜를 필요로 한다. 말로만은 안 되는 시대인 것이다. 갈 수록 사역의 길에 들어선 것에 부담을 느낀다. 그릇의 부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간구한다.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시는’ 은총을...
*말씀기도
지식이나 관념, 교리 가지고는 버티기 어려운 세상 한 복판에서 ‘높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이 초월을 체험하는 은총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