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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3:17-18ㅣ6월 10일


애 3:17-18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예레미야의 탄식은 유다의 아픔에 동일시하는 탄식이다. 누군가를 향한 중보가 깊어지면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며, 그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 된다. 그의 안위 또한 자신의 안위가 되기에 그를 끊으려면 차라리 자기를 끊어달라 청한다. 모세, 바울의 중보영성이 그랬다. 예레미야의 별명이 ‘눈물의 선지자’이다. 자기가 아니라 유다백성들 때문이었다.

죄는 회개 처리 않는 한, 평강과 복을 떠나게 한다. 하나님과 거리가 벌어진 상태이기에 하나님의 임재나 소망도 감지하기 어렵다. 성 요한이 말한 ‘영혼의 어두운 밤’과 같다. 요한이 꼭 죄의 경우를 말한 것은 아니다. 연단이나 수련 차원에서의 거리감 개념이 더 짙었다. 그러나 모두 ‘정화’를 필요로 하는 공통점이 있다. 영혼의 어두움은 초청이다. 방향을 전환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신자에게는 모든 상황 속에서 구원의 길이 항상 존재한다. 이것을 은혜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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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2:6-7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하나님은 아가페를 본질로 삼으시며 지혜로 만유를 다스리신다. 만물은 하나님의 지혜로 가득한 통치 원리를 따라 만들어졌고 그 원리를 따라 운행한다. 피조된 인생 역시 그 경륜과 통치의 원리를 따

잠 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저자는 지혜를 의인화한다. 지혜의 근원이 인격적인 하나님의 배려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서 그렇지 기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고 보게하시고 느끼게 하시는 데서 오는 은총이다. 본문에서 ‘나의 영을 부어준다’는 의미다. 솔로몬은

히 13:18-19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 모든 일에 선하게 하려는 것은 예수님 은혜 안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이 가능하다. 이 동력을 성령의 감화라 한다. 주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에 기도가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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