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5:8

에 5:8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금식은 왕의 총애를 불러왔다. 금식이 사망의 법을 넘게 한 것이다. 이사야의 선포처럼 금식은 흉악의 줄을 끌르고 모든 멍에를 꺾는다(사 58:6). 에스더와 수산의 유대인들이 연대하여 드린 합심의 금식기도가 새 날을 열게 한 것이다. 왕의 호의를 받게 된 에스더는 바로 하만의 일을 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잔치의 자리를 마련한다. 지혜가 작동한다.


바울은 유서와도 같은 디모데후서에서 말세의 풍조 중 하나를 ‘조급함’으로 규정한다. 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하만에겐 조급합과 자만이 가득하다. 아하수에로 역시 쉽게 격동하며 번복을 마다않는 인물이다. 반면 에스더는 신중하며 지혜롭다. 잔치를 마련한 것은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사실여부를 확인받고 반전의 조서를 받아내기 위함이다.


반전의 징후가 보인다해서 저돌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한걸음 한걸음 최선을 생각했다. 금식과 지혜가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오늘날도 금식하며 지혜와 총명의 영이신 성령님의 이끄심에 집중하면 돌파하지 못할 난관은 없다. 시험당할 즈음에도 능히 피할 길을 보게 하시기 때문이다. 유대교인들은 화목 이틀 금식했다. 초대교회는 수금 이틀 금식했다. 인생과제가 많을 수록, 사역의 숙제가 클수록 최소한 부분금식이라도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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