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4:36-37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엘리후는 사람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가 지닌 고정관념은 이제 욥을 악인이며 반역자로 몰아간다. 그나마 엘리후는 말로 드러낸 편에 속한다. 수많은 인간관계 가운데서 말로 드러내지 않은 가운데 누군가에 대해 마음으로 판단하며 정죄하는 경우는 수두룩하다. 그로인해 생긴 거리감과 적대감이 관계를 불편하게 한다.
욥의 친구들은 신앙을 지녀도 인지왜곡과 고정관념의 투사가 얼마든지 공동체를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욥기가 하나님의 현현에 이르는 38장까지 길고 지리한 논쟁을 담은 이유는 여러가지다. 물론 ‘의인의 고난’이 중심 주제이며 거기에서 영생의 소중함이 드러나는 장엄한 구도가 있지만 사람의 생각이 지닌 취약점도 현란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그들이 지닌 신의식과, 그것을 전개한 영적인 논리가 이렇게 사람을 오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현현이 아니었다면, 욥은 세상 어디에서도 자신의 의를 과신한 나머지 신을 대적하는 불경자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판단을 그치고 깊이 중보하며 하나님의 해석을 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욥은 내내 하나님의 해석을 구한 셈이다. 친구들은 중보가 아니라 판단했다. 공감이 아니라 동정했다. 경청이 아니라 주장했다. 나에게도 이런 약점이 있을 터이다. 주의 긍휼을 구하며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나의 생각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