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22

삿 19: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기브아에서 갈데 없이 노숙하게 된 레위 사람을 한 노인이 자기 집으로 들이자 지역 불량배들이 그 집을 둘러싸고 행패를 부린다. 그리고는 레위 사람의 첩을 데려다가 집단으로 성폭행을 하고 기어이 사경에 이르게 한다. 베냐민 지파가 살던 기브아가 어느새 소돔이 되어 있었다.


말씀이 부재한 소견은 하나님의 기준도, 보호도 없는 상태이기에 사탄의 활동이 용이하며 결국은 죄성과 욕망이 분출되는 출구로 작용한다. 말씀에 바탕하지 않은 윤리는 생명없는 장식품과 같다.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중심일 뿐 본성적으로는 그 근본이 어둠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시한폭탄과 같다.


말씀에 바탕하지 않은 생각들은 사탄이 노리는 틈이 되기 쉽다. 아니 그 자체가 이미 틈이다. 분별해서 보수하지 않으면 어둠이 진입해서 그 다음 단계를 꾀할 수 있다. 인간은 원래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지어진 존재다. 말씀과 성령을 따르려 함이 진정으로 평안을 누리는 길이다. 순간순간을 이 길로 가려 힘써야 한다. 오늘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루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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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9:27~28

욥 9:27-28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생명의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토설은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는 우는 아이의 마음이다. 엄마 이외에 다른 누가 없기 때문이며, 아울러 엄마만한 다른 누가 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 밖에

욥기 8:6-7

욥 8:6-7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의 말은 그 자체로 구구절절 그른 데가 없다. 그러나 그 말이 권선징악 개념에서 오는 판단에 바탕한다는 점이 문제다. 원칙적으로 판단은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욥기 6:10

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4절에서 욥은 자신의 고통을 전능자의 화살로 비유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신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그간의 경건에서 오는 자신감의 반응일 수도 있다. 만일 죄책이 가득했다면 전능자의 채찍으로 인정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