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4:7

출 34: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아버지의 악행을 삼사 대까지 보응하신다는 것은 자칫 연좌제처럼 보인다. 연좌제란 범죄한 자와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제도이다. 왕정시대 때 반역자의 삼족을 멸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근대 헌법은 이 제도를 금지했다. 각자가 자기가 저자른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개별화를 따랐기 때문이다. 이 형사책임의 개별화는 사실상 성경의 원칙이기도 하다.


렘 31:29-30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본문에서 아버지의 악행에 대한 보응을 자손들이 걸머진다는 것은 연좌제 개념이 아니라 부정적 학습과 부정적 정서의 결과를 말한다. 은연 중 악행을 보고 배운 자손이 배운대로 악행을 저지르면서 범죄하게 되고 그 대가를 치루는 악순환이다. 또 하나는 아버지의 악행으로 인해 억압된 피해의식과 분노가 자손의 삶에 실질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죄의 유전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성경은 최소 삼대에 걸친 신앙의 전승을 강력하게 권한다. 모두가 망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그러하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을 본받았던 디모데의 경우가 그렇다. 지금 자손 삼사 대에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신 6: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욥기 9:27~28

욥 9:27-28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생명의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토설은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는 우는 아이의 마음이다. 엄마 이외에 다른 누가 없기 때문이며, 아울러 엄마만한 다른 누가 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 밖에

욥기 8:6-7

욥 8:6-7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의 말은 그 자체로 구구절절 그른 데가 없다. 그러나 그 말이 권선징악 개념에서 오는 판단에 바탕한다는 점이 문제다. 원칙적으로 판단은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욥기 6:10

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4절에서 욥은 자신의 고통을 전능자의 화살로 비유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신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그간의 경건에서 오는 자신감의 반응일 수도 있다. 만일 죄책이 가득했다면 전능자의 채찍으로 인정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