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9:36-37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앞서 8년된 중풍병자 애니아를 예수의 능력으로 일으킨 베드로에게 욥바에서 전갈이 왔다. 선행과 구제에 힘썼던 다비다가 죽었으니 와달라는 간청이었다. 도르가 라고도 불리웠던 이 여제자는 특히 과부를 돌보는 일에 힘썼던 것 같다. 그런데 그녀에게 병이 왔고 그리고는 병사했다. 시체를 씻어서 건물 위층에 안치했으니 사망확인이 분명히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시점에서 룻다에 있는 베드로를 청한다. 장례예배를 부탁하려는게 아니었다.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초대교회가 움트는 당시 상황은 특이했다. 그네들은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의 경계를 수동적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죽어도 살 수 있을거라 여겼고 병들어도 치유의 가능성을 바라보았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사역 때문이었다. 가시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를 믿었고 제자들도 숙명의 벽을 아랑곳하지 않고 넘어버렸다. 이미 수습이 된 시신을 놓고 다음 장례절차를 의논하는게 아니라 베드로를 청하자는 결정의 배경이었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다비다같은 일군은 다시 살리셔야돼..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도착한 베드로가 다락방에 올라간다. 앞에는 깨끗이 수습된 시신이 놓여있다. 누구를 바라보며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 상황인가.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했던 이전 일을 기억한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시신을 놓고 예수님은 ‘달리다굼’ 일어나라 하셨고 죽은 딸은 살아났었다. 베드로가 따라한다. ‘다비다야 달리다굼!’
이 아침에 예수님이 나에게 ‘달리다굼’하시는듯 하다. 나를 통해 ‘달리다굼’하라 하시는 듯 하다. 내가 살아나야 이웃도 살릴 수 있다. 내가 새로워져야 이웃도 새로워지게 할 수 있다. 내 안의 나를 향해 외친다. ‘정목사야 달리다굼!’ 은정교우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달리다굼, 은정!’
*말씀기도
예수님은 진실로 당신을 믿는 자는 당신이 하신 일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것도 하리라 하셨는데 베드로가 그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었습니다. 저희도 그 성취를 보기 원합니다. 제자의 길을 굳건히 가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