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2:15-17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교인들은 바울에게 복음을 다시 들으면서 복음을 받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듣는다. 사랑한다는 것이 공동체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단지 알아서 잘들 하자.. 가 아니라 실천적인 덕목을 소개한다. 복음을 받은 자들, 즉 은혜를 입은 자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자. 시기하지 말고 내 일인 것처럼 마음을 같이 하자는 것이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했다. 우는 일을 겪은 사람을 대할 때 판단하지 말고 마음을 품어주자는 것이다. 낮은 데 처하라는 것은 겸손하라는 것인데 진정 주의 은혜요, 주께서 하신 것임을 인정하면 ‘내가’ 드러나는 언행은 삼가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지혜있는 체 하지 말자고 한다. 참된 지혜는 이웃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한다. 참된 지혜는 해결하고 수습하며 사람을 세우고 공동체를 세운다. 거기에 촛점을 맞추면 ‘~하는 체’ 할 여지가 없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똑같이 악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주님은 헷갈리신다. 어느 쪽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 말이다. 오히려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하는데,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 그 정도 하는 것으로도 잘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 적극적으로 선한 일을 연구하고 추진하라는 것이다. 선한 일에의 적극적인 의지가 아니면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싸우는 일은 없지만 공동체가 세워지는 것도 없다. 결국 같이 ‘망하는 과’에 속한 패턴이 된다.
이 권면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타락한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자의지로만 이룰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자의지는 반짝 할 수 있다. 단지 그것이다. 오히려 공로의식만 더 누적시킬 뿐이다. 나는 그런 사례를 여러 번 보았다. 나의 내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주님의 긍휼이 필요하고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이다. 바울이 이런 덕목들을 ‘우리의 열매’가 아닌 ‘성령의 열매’라 한 까닭이다.
*은정 가족들에게
사랑하려고 애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실패할 수도, 실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와 분별을 통해 바로 영적인 회복탄력성을 받아야 하고 사랑으로 가려 힘써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순종의 길을 가는 것이지요. 사실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예가 얼마나 될까요. 억지로라도 주님의 뜻을 이루려 할 때 본성을 넘어서려고 힘쓰는 모습을 보시고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