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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8일


 

사 4:4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더러움은 영으로 씻어낸다. 현대어성경은 영을 강풍으로 번역했다. 메시지성경은 불폭풍으로까지 갔다.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바람에 비유하셨다(요 3:8). 바람같은 성령의 역사가 임하면 탁한 공기로 가득한 방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 상쾌해지듯 영혼이 새로워진다. 더러움은 본질적으로 더러운 영의 열매이다. 영적인 역사는 그것이 빛의 영역에 속한 것이든, 어둠의 영역에 속한 것이든 그보다 더 강한 영적인 역사에 의해 바뀌어질 수 있다. 시온의 딸들이 더러워진 것은 더러운 영의 미혹이 배경에 있다. 그것은 이성이나 의지보다 상위의 차원이다. 즉 이성이나 의지로 영의 역사를 뒤집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되는 줄 알면서도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윤리나 도덕으로 더러움을 씻지 않으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바람같은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예루살렘에는 미풍이나 약풍이 아니라 강풍 내지 불폭풍 수준의 강도가 필요했다. 워낙 더러운 영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더러운 영에게만 뒤집어 씌워서도 안된다. 더러운 영은 싱글로 움직이지 않는다. 반드시 짝이 있다. 그 짝이 바로 타락한 본성이다. 바깥의 영과 내면의 성품이 콤비를 이루면서 시온, 즉 마음의 성전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따라서 대적의 기도만이 아니라 정화의 기도도 필요하다. 정화가 안된 대적기도는 마귀도 신경쓰지 않는다. 시온의 딸들은 탐심이 더러운 영을 불렀다. 그것이 우상숭배로 나가고 시온을 쓰레기통처럼 만들어 불폭풍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나의 마음이 청결하면 더러운 영은 오며가며 틈을 노리다 사라질 것이다. 탐심이 더러운 영을 부른다면 청결한 마음은 하나님의 임재를 청한다.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은 임재의 상징이다.

삼상 16: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다윗의 수금은 성령의 역사를 불러왔다. 그랬더니 번뇌케하던 악령이 떠나갔다. 영적전쟁에 대한 언급이 희박한 구약성경에서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축사사역의 현장이다. 바람처럼 일어난 성령의 흐름이 사울의 마음을 덮자 악한 영이 견디지를 못한 것이다.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의 역사가 갈수록 절실해지는 시대이다. 우선 나의 내면부터 정화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다윗처럼 쓰임받는 것이다. 은정의 찬양에, 은정의 기도에 이런 기름부으심이 충만하기를 소망한다. 강한 바람같은 영적 역사를 소망한다.

다윗의 수금처럼 쓰임받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다윗의 수금처럼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더러움을 씻어내시고 구름과 연기, 화염의 빛으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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