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3.23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삭개오는 예수님이 보고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이 운집했고 키는 작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자 나무에 올라갑니다. 얼마를 기다렸는지 알 수 없지만

세리장으로서의 체면을 내려놓고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나무를 부둥켜안고 아슬아슬하게 버티다가 결국 사랑이 담긴 예수님의 눈동자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 눈동자의 마주침 이후로 삭개오는 다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다른 사람처럼 변화된다는 것은 쉽지않은 일입니다. 그게 쉬웠다면 우리 모두 지금처럼은 살지 않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입니다. 제국의 앞잡이이며 수탈자의 리더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little 이완용'입니다. 상식적으로 그런 사람이 개과천선하려면 얼마나 많은 일들과 교훈들이 쌓여야 하겠는지요. 그런데 그 날 한 방에 그는 변합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달려갔고.. 올라가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모함이며 갈망입니다. 그는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여 빨리 걷는 정도가 아니라 달려간 사람입니다. 어른이 나무에 오르려면 체면과 상식을 개의치말아야 합니다. 그는 영광을 볼 수 있는 자리에 가려고 그리 크지도 않은 나무에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기어 올라갑니다. 나는 어땠을까? 사람이 너무 많아.. 뭐 나를 보러 오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구경오지, 이러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사람들 뒤통수 사이를 기웃거리며 어떤 사람이야 하다가 그냥 사무실로, 혹은 집으로 돌아지는 않았을까? 그 날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삭개오의 내면이 어땠는지 겉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러나 그의 행동이 그의 내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갈망하는 마음, 사모하는 마음, 목마른 마음이지요. 주님은 이런 사람을 놓치지 않으십니다. 은혜는 이런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한 방에, 주님과의 만남 그 한 방에 세리장이 되기까지 쌓여졌던 그의 생활과 가치관이 무너집니다. 제국의 앞잡이에서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바뀌어집니다. 재물 때문에 주님께로부터 멀어져간 비극적인 관리와는 달리 삭개오는 재물로 인해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벗어버리는 길이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는 체험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이 몰리는 곳이 무화과나무 위이며 주님이 쳐다보는 곳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사모하는 마음이 몰려있는 그 사람의 내면을 놓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청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만남은 구체적인 변화를 수반했습니다.

그 변화를 보시면서 주님은 결정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예배하는 자리, 말씀을 대하는 자리, 기도하는 자리는 무화과나무입니다. 거기에는 주님의 눈길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다시 그간의 나의 삶을 살피며 어떤 변화의 열매가 있었는가를 돌아봅니다. 그러고보니 오늘 청계산이라는 나무 위에 올라갑니다. 그 분을 깊이 만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정재우Joshua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골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소금은 삼투압 유지나 알카리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간의 생존에 물과 함께 중요한 요소다. 짜면서도 미네랄 성분 때문에 단 맛도 함께 지닌 소금은 로마시대에는 월급 대신 지불될 정도로 현금 가치를 지닌 광물이었다. 소금은 음

골 3:23-24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세상에 속한 사람에겐 여러 기준이 작용한다. 상식의 기준, 자아의 기준, 본능의 기준 등이다. 이로 인해 온갖 복잡다단한 일들이 생긴다. 하나님에게 속한 신자에겐 주님의 기준이 있다. 오히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평강의 반대는 불안이다. 폴 틸리히는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경험할 때 가지는 감정을 불안이라 설명하고 주로 죽음과 공허, 죄의식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죄중에 잉태된 사람은 출생때

bottom of page